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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각정요(玄覺正要)』는 구한말 동학으로부터 분화된 교단인 시천교(侍天敎)의 교리서로, 1920년에 가회동(嘉會洞)의 시천교총부(侍天敎總部)에서 발행한 책이다.
동학은 2대 교조 최시형(崔慶翔, 1827〜1898) 사후 손병희(孫秉熙, 1861〜1922)를 중심으로 한 천도교와 이용구(李容九, 1868〜1912)를 중심으로 한 시천교로 분화되었다. 시천교는 다시 시천교본부(侍天敎本部)와 시천교총부(侍天敎總部)로 분립하여 각각 교단의 역사서와 교리서를 발간하였다. 본서는 김연국(金演局, 1857〜1944) 계열인 시천교총부의 교단 정비를 위해 동학의 교리를 정리하고 편집하여 발간한 책이다.
2. 저자
동학의 2대 교조인 최시형은 동학농민혁명을 거치며 탄압 정책을 펼친 조선 정부에 의하여 1898년에 처형되었다. 아울러 그의 제자인 김연국, 손천민(孫天民, 1857〜1900) 역시 체포되자 손병희는 동학 조직 재건의 중심이 되었다. 이에 손병희의 지시에 따라 이용구는 서북 지방에 동학을 포교하며 교단의 세력을 확장하였다. 또한 ‘대동회’라는 민회 조직을 운영하여 동학 교인으로 구성된 연결망을 구축하였다. 이후 대동회가 송병준(宋秉畯, 1857〜1925)의 일진회와 통합하여 규모를 키웠으며, 이용구의 세력은 민회 조직을 통해 동학 교단에 점차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러나 동학 조직이 일진회의 활동에 점차 흡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손병희는 교단과 민회의 주객전도를 지양하고자 하였다. 이에 동학 조직은 손병희를 중심으로 광무 9년(1905) 재편된 천도교와 이용구‧송병준이 광무 10년(1906) 창립한 시천교로 분열되었다. 한편 이 시기 석방된 김연국은 대안적 지도자로 떠올랐고, 그와의 역할 분담을 꾀한 이용구의 회유에 따라 융희 2년(1908) 시천교에 입교하였다.
창립 초기 시천교는 이용구·송병준을 중심으로 한 민회의 정치 활동과 김연국을 내세운 교단의 종교 활동이 이원 운영되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진회가 해산하고 교단에 통합되면서 조직이 재편되었다. 같은 시기 이용구의 사망에 따라 시천교는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가진 송병준계를 중심으로 교권이 집중되고 김연국계가 소외되며 교단은 다시금 분열되었다. 이에 따라 시천교는 송병준계의 시천교본부와 김연국계의 시천교총부로 각각 별도 운영되었다.
비교적 재원이 부족함에도 시천교총부는 1917년에 가회동에 교당을 짓고 교세를 넓히는 데 힘썼다. 특히 이용구가 동학의 도통을 계승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교단의 종통에 대한 서적의 간행에 힘을 쏟아야 했던 시천교본부와는 달리 최시형의 직계 제자로서 김연국의 시천교총부는 교리서 정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하고 회갑이 되는 해인 1920년에 『현각정요』를 포함하여 『시천교종역사(侍天敎宗歷史)』, 『시천교전(侍天敎典)』, 『정리대전(正理大典)』 등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교단을 정비하는 한편, 김연국은 정감록과 같은 도참서에 영향을 받아 계룡산 신도안으로 교단의 중심을 옮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가회동 교당의 건립과 신도안의 땅 매입 등 시천교총부의 운영 과정에서 최류현(崔琉鉉) 등 서북 출신 교령(敎領)과 권병덕(權秉悳)으로 대표되는 남도 출신 교령 사이의 교권 다툼이 발생하였다. 이에 서북 출신 교령을 지지한 김연국에 의해 교적에서 제명된 권병덕 등 남도 출신 교인 세력이 탈교하는 등 시천교총부의 세력이 축소되었다.
이러한 분열 과정에서 민회 활동보다 종교적 권위에 더욱 관심을 둔 김연국은 1923년에 교명을 상제교(上帝敎)로 고치고 보국안민‧광제창생을 원하는 사람들을 계룡산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상제교는 종교촌을 중심으로 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였고, 천진교(天眞敎)‧동학대종원(東學大宗院)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오늘날까지 교단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1책(冊)의 육침안(六針眼) 강희철(康熙綴, 사침안 선장본의 끈을 맨 위‧아래 구멍과 꼭지점 사이에 각각 1개씩 더 구멍을 내어 엮는 제책방식)의 선장본(線裝本)으로 표지는 만자문(卍字紋)이 새겨져 있다. 앞표지 좌측 상단에는 표제(表題)인 ‘현각정요’가 한자로 쓰인 제첨지가 붙어있다. 뒷표지 좌측 하단에 ‘충남논산군두마면신도내상제교대본원(忠南論山郡豆磨面神道內上帝敎大本院)’ 인장이 있어 상제교로 명칭이 변경된 이후에도 교단의 도서로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곽(匡郭)의 형태는 사주쌍변이고 반엽 기준 10행 18자로 작성되었다. 어미(魚尾)는 존재치 않고 중봉(中縫) 상단에 판심제(版心題)가 있고 가운데에 각 면에 수록된 내용의 제목이 표기되어 있다. 면차(面次)는 중봉 하단에 위치한다.
책의 첫머리에는 경도사(敬道師) 이인상(李寅相)이 1920년 중춘(仲春, 음력 2월을 달리 이름)에 작성한 서문이 있다. 그는 서문에서 “배우는 이로 하여금 바다와 같은 가르침을 건너는 보배로운 뗏목을 만들게 한다”며 이 책을 간행하는 의의를 밝혔다.
본서의 말미에 삽입된 판권기에는 대정 9년(1920) 7월 20일 인쇄되어 25일에 발행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저작 겸 발행자로서 최류현이 쓰여있고 발행소인 시천교총부의 주소가 가회동 1717번지로 기재되어 있다. 이는 1920년에 서북 출신 교인 세력이 남도 출신 교인 세력과의 교권 다툼에서 승리하고 교리서의 발간과 같은 교단의 중심 사업을 차지하였음을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이 조선인쇄주식회사(朝鮮印刷株式會士)에서 인쇄되었던 사실을 통해 1920년대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조선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종교의 서적 간행까지 맡았을 정도로 사업을 운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이원섭, 시천교인의 교단 활동과 수도 생활 연구 : 1906∼1924년 시천교의 창립과 교단 분열의 역사를 중심으로, 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4.
• 김정인, 大韓帝國期·日帝强占期 侍天敎의 존재양태와 활동, 국사관논총, 103, 2003, pp. 55〜82.
• 이원섭, 시천교의 교리적 지식의 유통과 수용 양상 : 『시천교월보』의 순한글문을 중심으로, 차세대인문사회연구, 22, 2025, pp. 109〜136.| 등록번호 | 청구기호 | 권별정보 | 자료실 | 이용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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