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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원록(敎院錄)』은 조선 후기 향교와 서원의 배향인물 등을 엮은 편저자 미상의 필사본이다.
본서는 계성사(啓聖祠)와 향교에 배향된 유학의 성인을 순차에 따라 작성하는 한편 전국에 소재한 서원과 사우(祠宇)를 지역별로 묶어 배향인물에 대한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서원을 열거한 다음에는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일부를 뽑아 수록하였다.
2. 저자
본서는 필사기(筆寫記)와 서(序)·발문(跋文) 등 참고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편저자를 비롯하여 작성된 시기 등 관련 정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책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교원록」에 계성사·향교에 배향된 유학의 성인,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위한 진설도와 축문, 전국에 위치한 서원과 사우의 배향인물에 대한 사항을 수록한 것으로 보아 유학적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사족 계층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된 이야기의 일부를 책 후반부에 함께 초록(抄錄)한 것을 통해 편저자는 전통적인 유학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변환기를 겪었던 조선 후기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1책(冊)의 사침안(四針眼) 선장본(線裝本)으로 장정되었다. 앞표지 좌측 상단에는 표제(表題)인 ‘교원록’이 묵서(墨書)되었다. 광곽(匡郭)과 어미(魚尾)는 존재하지 않으며 행자수(行字數)가 일정하지 않은 필사본이다. 권수면에 ‘고서학애가장(固西鶴崖家章)’이라는 장서인이 있어 소장본으로 관리된 것을 추측할 수 있으나, 관련된 기록은 확실하지 않다.
책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교원록」은 계성사에 배향된 공숙량흘(齊國公孔叔樑紇), 곡부후 안무유(曲阜侯顔無繇), 내무후 증점(萊蕪侯曾點), 사수후 공리(泗水侯孔鯉), 주국공 맹격(邾國公孟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으로 공자(孔子)·안자(顔子)·자사(子思)·증자(曾子)·맹자(孟子)의 순서로 향교에 배향된 유학의 다섯 성인을 비롯하여 공문십철(孔門十哲)과 동무(東廡)·서무(西廡)에 모신 유학자의 위패, 석전대제를 지내기 위한 진설도와 축문을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전국에 위치한 서원과 사우를 영남(204개소)·경기(27개소)·호서(53개소)·호남(51개소)·해서(12개소)·관동(10개소)·관서(19개소)·삭방(14개소) 순서로 기재하였다. 각 서원은 배향인물에 대한 사항을 함께 부기하였다. 책의 후반부에 수록된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원본의 체제와 관계없이 편저자가 뽑아 기재한 것으로 추측된다.
본서가 제작된 시기는 18세기 이후로 추측된다. 전반부 「교원록」에 수록된 서원과 사우의 건립과 사액 시기의 하한선이 18세기 중반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편저자가 수집한 정보의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연루되어 처형된 유몽인이 1794년에 신원(伸寃)되어 그의 후손이 1832년에 『어우집(於于集)』을 간행하였기에 본서의 완성은 19세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유학에 기반한 중앙 집권 국가로서 직역을 세습하는 향리 대신 과거를 통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지방 사족을 성장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선조대에 접어들며 서원 보급정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고, 이황(李滉, 1501〜1570)·조식(曺植, 1501〜1572)을 비롯한 조선의 유학자를 배향하며 전국에 서원 수가 급증하였다. 이들 서원은 유학자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건립되었기에 기호·영남 등 학파를 중심으로 지방의 사족은 일종의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왜란·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거치며 지역을 중심으로 분화된 사족은 지방관을 통한 향촌 통치와 양민의 교화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향교의 제례와 서원은 지방 사족들이 모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발달한 야담은 한문으로 쓰인 짧은 길이의 설화·야사·단편 등 잡다한 이야기의 통칭이다. 야담은 유학적 사상에 바탕을 둔 기존 한문문학과는 달리 사회의 여러 모순과 갈등을 비롯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한문으로 작성되었다는 특성상 주로 사족 및 중인층에 의해 소비되었다는 사실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전근대적 질서에 회의적인 시각이 생겨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본서는 「교원록」과 「어우야담」 초록본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원고가 함께 장정되어 있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적인 유학적 이념에 바탕을 둔 조선 후기 사족의 학문적·사회적 관심사와 변화하는 조선 후기에 사족 사이에서 한문으로 쓰인 잡설이 퍼져 가던 당대의 사회상을 함께 드러낸다는 점에서 본서가 지닌 자료로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안다미, 조선후기 서원정책과 士族의 서원활동, 서울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3.| 등록번호 | 청구기호 | 권별정보 | 자료실 | 이용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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