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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가학(國家學)』은 구한말에 나진(羅瑨, 1881〜1918)과 김상연(金祥演, 1874〜1941)이 다카다 사나에(高田早苗, 1860〜1938)의 『국가학원리(國家學原理)』와 콘라드 보른하크(Conrad Bornhak, 1861〜1944)의 『일반국가학(Allgemeine Statslehre)』을 일본어로 번역한 기쿠치 고마지(菊地駒治)의 『국가론(國家論)』 등의 저서를 중역(重譯)하여 엮은 책이다.

본서는 엄주익(嚴柱益, 1872〜1931)이 설립한 근대식 사립학교인 양정의숙(養正義塾)에서 국가학 과목의 교과서로 활용되었다.

2. 저자

나진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석능(石能)이다. 1899년부터 일본 명치법률학교(明治法律學校)에서 관비유학생으로 법률을 공부하였다. 1903년 졸업 직후 조선 정부의 관비유학생 소환령에 의해 귀국한 뒤 근대식 교육을 위해 설립된 흥화학교(興化學校)와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1907년부터는 평리원(平理院) 검사를 겸직하였고, 이듬해부터 사망 시까지 대구·경성·공주 등지의 법관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항일의병장 김봉기(金奉基, 1866〜1908)의 사형 선고 재판을 비롯한 10여 건의 의병 활동을 기소하는 등 친일 행위에 앞장섰고, 한일합병 이후에도 법관으로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였다.

김상연의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수송(壽松)·영양(永陽)이다. 1899년 관비유학생으로서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방어정치과(邦語政治科)에 입학하였다. 1902년에 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소환령에 따라 귀국하여 1904년부터 관립농상공학교(官立農商工學校)의 교관으로 근무하였고, 1905년부터 황성신문(皇城新聞)의 부사장으로서 언론계에 관여하였다. 1906년부터는 법관양성소의 교관이 되었다. 이후로도 지방관을 비롯하여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의 강사, 흥사단(興士團)의 총무 등 관직생활과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한일합병 이후로도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료로서 시정방침을 선전하고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식민통치에 협력하였다.

나진과 김상연이 작성한 『국가학』의 기본 구조는 다카다 사나에가 저술한 『국가학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1882년에 동경전문학교의 창립에 참여하는 동시에 강사로 취임한 다카다 사나에는 방어정치과에서 국가학을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는 스위스의 법학자 블룬칠리(Johann Caspar Bluntschli, 1808〜1881)의 국가학과 영미의 정치학을 결합한 『국가학원리』를 편찬하였다. 『국가학원리』는 일종의 강의록과 같은 형태로 저술되었고, 김상연은 동경전문학교에서 수학하던 당시 다카다 사나에의 『국가학원리』 강의를 수강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진과 김상연의 『국가학』은 『국가학원리』를 중심으로 콘라트 보른하크를 비롯한 영미권 정치학 서적을 중역하고 편집하여 완성되었다.

양정의숙은 구한말 조선인을 대상으로 서양식 법학을 가르치기 위해 설치된 전문학교이다. 설립자 엄주익(嚴柱益, 1872〜1931)은 일본의 새 문물을 견학한 후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05년 양정의숙을 창립하였다. 특히 구한말 이뤄진 서구 열강과의 조약으로 인한 국내외 정세의 혼잡함을 바로잡기 위해 서구의 법률을 강의하고자 하였다. 엄귀비의 혈연이었던 엄주익은 근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토지를 하사받았기에 양정의숙은 타 사립 법학교에 비해 운영 규모에 여유가 있었다. 아울러 법학협회를 개최하거나 정부에서 법률전문학교의 의견을 구하는 등 양정의숙은 구한말 신식 법률 교육기관으로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유각서(己酉覺書)를 통해 조선의 사법권을 일제에 빼앗기며 조선인이 법관으로 임용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학생 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황실로부터 하사받은 내사지(內賜地)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지자 양정의숙의 운영은 점차 어려워지게 되었다. 결국 1913년 고등보통학교로 학제를 변경함에 따라 양정의숙은 전문학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1책(冊)의 사침안(四針眼) 선장본(線裝本)으로 표지는 만자문(卍字紋)이 새겨져 있다. 앞표지 좌측에는 표제(表題)인 ‘국가학’이 목판으로 인쇄된 제첨지가 있다. 제첨지의 하단에는 ‘양정의숙’이 함께 인쇄되어 있는데, 당시 유통된 교과서 중 양정의숙을 비롯하여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이 새겨진 판본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처별로 제첨지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곽(匡郭)과 어미(魚尾)는 존재하지 않으며 반엽 기준 14행 33자로 작성되었다.

권수면에 장서인인 ‘양정의숙지장(養正義塾之章)’이 있어 양정의숙의 소장본으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김병제(金昞濟)의 장서인이 함께 확인된다. 양정의숙에 설치된 국가학은 1학년 과목으로, 1909년 4월에 양정의숙을 졸업한 김병제가 1학년이던 시기 사용한 교과서로 추정된다. 권수면 하단에는 편역자 나진과 김상연의 별칭을 각각 금성(錦城)과 영양으로 표기하였다. 타 소장처에 각각의 별칭을 석능과 수송으로 기재한 판본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2종 이상의 판본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전반부〜중반부에 해당하는 1장〜15장까지는 다카다 사나에의 『국가학원리』의 내용을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특히 8장부터 12장까지는 블룬칠리의 『일반 국가법(Allgemeines Staatsrecht)』을 중심으로 한 초역이라 할 수 있다. 16장〜21장은 보른하크의 『일반국가학』을 일본어로 번역한 기쿠치 고마지의『국가론』을 초역하였다. 보른하크의 저서가 1903년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본서의 간행은 1903년 이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김상연이 부사장을 역임하던 시기『황성신문』에 1906년 6월 21일 실린 광고를 통해 간행시기의 하한선을 1906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본서는 20세기 서구 사상의 주류를 점했던 독일의 국가학 관련 서적을 동아시아의 언어로 재가공한 지적 생산물이다. 또한 구한말 일본에서 선진 지식을 수용하고자 설립된 신식 교육시설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던 점에서 본서가 지닌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김효전, 나진·김상연 역술 『국가학』 연구, 서울 : 대한민국학술원, 2023.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서울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 김효전, 養正義塾의 법학교육, 법사학연구, 45, 2012, pp. 4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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