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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산화해사전(校刪華海師全)』은 고려 말의 유학자 신현(申賢, 1298〜1377)의 학문과 행적을 모아 엮은 언행록이다. 본서는 1935년 강영직(姜永直)에 의해 간행된 신연활자본이다.

신현의 문인 원천석(元天錫, 1330〜?)·범세동(范世東)·정몽주(鄭夢周, 1338〜1392) 등이 편집하고자 하였으나, 고려 말의 혼란에 여러 차례 수난을 당하여 간행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화해사전』이 조선 후기에 처음 발견된 이후 여러 판본이 제작되었으나 당사자인 신현이 당대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본서에 수록된 신현의 행적에도 조선의 제도가 상당수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위서(僞書)의 가능성이 있다.

2. 저자

신현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당대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화해사전』을 비롯하여 족보 등 조선 후기에 간행된 일부 자료에서만 신현의 계보와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신현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신경(信敬), 호는 불훤재(不諼齋)이고 고려 말 활동한 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315년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고 원(元)에서 주공천(朱公遷)‧허겸(許謙, 1270〜1337)‧전당(錢唐, 1314〜1394) 등과 교류하며 대학자가 되었다. 명(明)이 들어선 이후에도 초빙되어 명 황제가 사례(師禮)로 대하고 불훤재(不諼齋)라는 호(號)를 내렸다. 중국에서의 언행을 그의 문인들이 수집하여 전하고자 하였으나 보우(普雨)와 신돈(辛旽, ?〜1371) 등이 사적을 불사르고, 정몽주 등이 다시 원고를 모아 『화해사전』을 만들었으나 조선 개국 후 정도전(鄭道傳, 1342〜1398)과 권근(權近, 1352〜1409) 등에 의해 수난을 당하였다. 이에 『화해사전』의 원고를 원천석·범세동·공명량(孔明亮)이 원고를 나누어 감추었기에 멸실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오늘날 남아있는 신현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1817년에 공주(公州)의 김노정(金魯定)이 편찬한 『만성보(萬姓譜)』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1824년에 간행된 『영해신씨족보(寧海申氏族譜)』의 「신보발(新譜跋)」에 따르면 1818년에 『만성보』에 삽입된 신숭겸(申崇謙, 875?〜927)에서 신현까지의 계보와 신현이 영해군(寧海君)에 책봉되어 영해신씨의 본관이 시작된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후 1852년 발견된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에서 『화해사전』의 서명과 정몽주와의 관련성이 알려지며 평산신씨와 영해신씨 사이의 계보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화해사전』의 원고는 1867년 신현의 자손 신병옥(申秉玉)이 우연히 관서(關西)의 공씨(孔氏) 집에서 발견하여 알려졌다. 당시 『화해사전』은 필사되어 유통되었는데, 여러 차례 필사되며 생기는 오류를 고치기 위해 1920년에 신세휴(申世休)가 비인현(庇仁縣)의 율리사(栗里祠)에서 7권 분량의 목판본 200질을 간행하였다. 『화해사전』이 널리 유통되자 평산신씨 역시 1920년에 편찬한 파보(派譜)를 시작으로 점차 영해신씨를 계보에 삽입하기 시작하였다.

본서는 판권기가 떨어져 나가 있으나, 1931년 군산(群山)에서 우연히 목판본 『화해사전』을 얻어 본 강영직이 1935년에 새롭게 간행한 신연활자본이다. 그는 『화해사전』의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글을 읽고 신현을 성리학의 종장(宗匠)으로 생각하게 되어 오자(誤字)를 수정하고 신현과 관련성이 적은 부분을 삭제하는 등 책 내용을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4권(卷) 2책(冊)의 사침안(四針眼) 선장본(線裝本)으로 표지는 만자문(卍字紋)이 새겨져 있다. 앞표지 좌측에는 표제(表題)인 ‘교산화해사전’이 묵서(墨書)된 제첨지가 있다. 제첨지 하단에 건(乾)·곤(坤)의 책차를 표기하였다. 표지 이면(裏面)에는 정오표를 수록하였다. 광곽(匡郭)의 형태는 사주쌍변이고 반엽 기준 10행 20자의 주쌍행(註雙行)으로 작성되었다. 어미(魚尾)는 상하향이엽화문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판심제는 어미 하단에 위치해 있으며, 판심제 하단에는 각 면에 실린 내용의 제목이 표기되어 있다. 장차(張次)는 하어미(下魚尾) 하단에 위치한다.

본서의 첫머리에는 1932년에 작성된 강영직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실린 동방도통도(東方道通圖)에는 우리나라 유학의 도통을 단군에서 기자(箕子)로 이어지고 설총(薛聰)·최충(崔冲)·김양감(金良鑑)·안향(安珦)·우탁(禹倬)을 거쳐 신현에게 전한 것이 정몽주와 이색(李穡)에게 이어진 것으로 기재되었다. 불훤재신선생세계도(不諼齋申先生世系圖)에는 신현의 계보를 신숭겸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기재하였다.

본서의 수록 내용과 체제는 필사본 및 목판본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필사본과 목판본의 권 4·5를 압축하여 권 3에 싣고, 권 6 신현 가계 기록과 권 7 고려 말의 여러 기록을 삭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부록을 새로이 만들어 후학의 찬술을 삽입하였다.

본서는 당대의 기록이 없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밝혀진 고려 말의 유학자 신현의 언행을 담은 책이다. 아울러 책에 실린 신현의 행적 역시 고려가 아닌 조선의 제도가 적용되었고, 불교를 배척하거나 사단칠정과 같은 성리학 사상 등 조선의 문화가 삽입되었다. 한편 조선후기는 문중 문화의 발달에 따른 조상의 현창(顯彰)과 족보 결합 등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시기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유학에 기반한 『화해사전』이 발견되고 평산신씨와 영해신씨의 계보 결합 등 당시의 사회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본서가 지닌 자료로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김석만, 華海師全 小考, 향토사연구, 5, 1993, pp. 143〜149.

• 박재우, 『華海師全』의 발견과 저작 연대, 역사문화논총, 1, 2005, pp. 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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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32974 古 320.4 ㄱ261ㅎ v.1 서울관 귀중서고(1층 대출대) 이용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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