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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민수지(國民須知)』는 개화기에 서구 근대 입헌국가 체제를 조선 인민에게 소개하고 국가관념을 고취시키고자 간행된 편저자 미상의 계몽서이다.
본서는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에서 활동한 김우식(金宇植)이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연재되었던 『헌정요의(憲政要義)』를 1906년에 『국민수지』라는 서명으로 바꾸어 간행한 책이다.
2. 저자
『국민수지』는 판권기(版權記)와 간기(刊記) 및 다른 기록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항이 없어 구체적인 편저자를 알 수 없다. 다만 간행과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으로서 『황성신문』의 1906년 4월 25일 기사에서 김우식이 사비를 들여 『국민수지』를 간행하고 사회의 유지인사(有志人士)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국민수지』는 본래 헌정연구회에서 『헌정요의』라는 이름으로 『황성신문』 1905년 7월 15일자부터 8월 3일까지 게재한 연재물이다. 헌정연구회는 1905년 5월 양한묵(梁漢默, 1862〜1919), 이준(李儁, 1859〜1907), 윤효정(尹孝定, 1858〜1939)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 계몽운동가였던 이들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조선인민에게 입헌정치사상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이에 10회에 걸쳐 『헌정요의』를 『황성신문』에 연재하였다. 헌정연구회의 의사(議士)였던 김우식은 이 『헌정요의』의 서명을 고쳐 『국민수지』로 간행하였다. 김우식은 전 용담군수(龍潭郡守)이자 자산가로, 1904년에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요약한 『목민심서정문(牧民心書正文)』을 간행하고, 1905년에는 『헌정연구회취지서(憲政硏究會趣旨書)』를 간행하는 등 출판 분야에 관심이 높았다. 1906년의 『국민수지』 간행은 헌정연구회가 해산한 이후이나 헌정연구회의 입헌정치사상에 대한 논의를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책이라는 뜻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우식의 간행 이후 『국민수지』는 1907년에 국민교육회에서의 출판과 현채(玄采, 1856〜1925)의 『유년필독석의(幼年必讀釋義)』 삽입 출판, 광학서포(廣學書鋪)에서의 출판, 1909년 미국 소년서회(少年書會)에서의 출판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판본이 나타났다. 또한 1906년 『대한자강회월보(大韓自强會月報)』와 1907년의 『제국신문(帝國新聞)』·『신한민보(新韓民報)』에 연재되기도 하였으나 한일합병 직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도서의 발매가 금지되었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1책(冊)의 사침안(四針眼) 선장본(線裝本)으로 장정되어 있다. 앞표지 좌측에 사변이 쌍변으로 둘러쳐진 표제부(表題部)에 서명인 ‘국민수지’가 인쇄되어 있다. 광곽(匡郭)의 형태는 사주쌍변이고 반엽 기준 10행 24자의 주쌍행(註雙行)으로 작성되었다. 계선(界線)과 어미(魚尾)는 없고 중봉(中縫)에 판심제(版心題)와 장차(張次)가 표기되어 있다.
책의 첫머리에는 김우식의 간행과 관련한 의도가 쓰인 서문이 실려 있다. 그는 『국민수지』의 간행에 있어 이 책을 통해 국사를 논의할 수 있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평하며 국권회복의 방안으로서 이 책을 제시하는 의도를 밝혔다. 서문 다음면에 서적의 목록이 있으며, 목록면 하단에는 ‘김용진(金容鎭)’, ‘송원(松園)’의 장서인이 있다. 제1장 2면에 오자(誤字)를 수정한 흔적이 남아 있다.
본문은 총 8장으로 구성되었다. 그 순서는 제1장 ‘국가(國家)의 본의(本意)’, 제2장 ‘국가급황실(國家及皇室)의 분별(分別)’, 제3장 ‘국가급정부(國家及政府)의 관계(關繫)’, 제4장 ‘국가급정부(國家及政府)의 권한(權限)’, 제5장 ‘국민급정부(國民及政府)의 관계(關繫)’, 제6장 ‘군주(君主)의 주권(主權)’, 제7장 ‘국민(國民)의 의무(義務)’, 제8장 ‘국민(國民)의 권리(權利)’로 이루어져 있다. 당초 『황성신문』에 『헌정요의』로서 연재될 때는 제7장 ‘국민의 의무’까지 연재되었으나, 책으로 성립될 때는 8장까지 보충하여 『국민수지』로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907년 국민교육회에서 간행된 판본은 제9장 ‘독립국(獨立國)의 자주민(自主民)’이 추가되어 있어 본서와 차이를 보인다. 이와 달리 국민교육회본과 같은 해 간행된 광학서포본은 본서와 동일하게 제8장까지만 수록되어 있다. 더불어 본서는 간행과 관련한 김우식의 간행사만이 붙어 있고, 미처 수정되지 않은 오자(誤字)를 고친 흔적이 확인되기에 1906년에 최초로 간행한 판본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수지』는 구한말에 전개된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간행되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조선의 인민들로 하여금 국가와 정부, 황실, 군주, 국민의 관계를 비롯하여 국민의 의무와 권리 등 서구 국가학과 정치학에 기초한 사상을 배양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지식인들의 시도는 『국민수지』의 여러 차례에 걸친 간행과 언론·잡지 연재를 통해 효과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술국치 직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국민수지』가 발매금지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큰 영향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서는 이러한 『국민수지』의 간행 경위와 계보를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최기영, 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 서울 : 일조각, 1997
• 정혜정, 개화기 계몽교과서에 나타난 근대국가수립론 : 『국민수지(國民須知)』를 중심으로, 한국교육사학, 33, 2011, pp. 125〜150.| 등록번호 | 청구기호 | 권별정보 | 자료실 | 이용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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