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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갑을록(甲乙錄)』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윤선거(尹宣擧, 1610〜1669)·윤증(尹拯, 1629〜1714) 부자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회니시비(懷尼是非)에 대해 윤광소(尹光紹, 1708〜1786)가 소론의 입장을 담아 1781년에 편찬한 당론서(黨論書)이다.
본서는 윤광소의 편찬 이후 필사본으로 전하던 『갑을록』을 1925년에 윤증의 9대손 윤하중(尹夏重, 1874〜1944)이 원고를 재정리하여 목활자로 간행한 책이다.
2. 저자
윤광소의 자는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으로 윤선거의 형인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고손(高孫)이다. 윤증의 방손(傍孫)으로서 그의 증손인 윤동수(尹東洙, 1674〜1739)와 윤동원(尹東源, 1685〜1781)을 스승으로 섬겼다. 윤증의 문집인 『명재유고(明齋遺稿)』의 교정을 담당하고 『의례문답(疑禮問答)』과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수윤(修潤)하는 등 저술에 힘썼다.
당쟁이 격렬하게 전개되고 이에 따른 환국이 연속되던 조선 후기의 붕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당론서를 편찬하였다. 특히 송시열과 윤선거·윤증 부자를 둘러싸고 발생한 회니시비(懷尼是非)에 의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한 이후 당론서는 본격적으로 편찬되고 보급되었다. 노론 당인들은 강화도에서의 윤선거의 행적과 윤휴와의 관계를 두고 ‘의리(義理)’를 바탕으로 한 정책 논리를 통해 비판하였고, 소론 당인들은 윤선거와 윤휴의 관계를 ‘탕평(蕩平)’에 기반 논리로서 대응하였다. 이 논쟁은 대체로 노론의 공세에 대해 소론이 대응하는 구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시기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1776년에 즉위한 직후 노론의 요구에 따라 윤선거와 윤증의 관작을 추탈(追奪)하고 그들의 문집을 훼손시키도록 명하였다. 소론 준론(峻論)에 속한 윤광소는 이에 대응하고자 1781년에 『갑을록』을 편찬하였다. 서명은 노론과 소론의 분열이 일어난 1684년 갑자년과 1685년 을축년의 논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에서 기인하였다. 주로 윤선거·윤증 부자가 송시열 등과 교환한 편지 및 상소문과 회니시비의 논쟁 양상에서 생산된 상소문과 통문 등에서 필요한 부분을 뽑아 수록하였다. 윤광소는 당시 윤선거·윤증 부자를 변호한 결과 지속적으로 노론의 비판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윤선거·윤증 부자에 대한 조치는 1782년 복권이 성사되며 해소되었다.
『갑을록』은 1782년의 복권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필사되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본서는 새로운 출판환경에서 당론서의 재간행이 만연하던 시기인 1925년에 윤증의 9대손 윤하중이 원고를 다시 정리하여 목활자로 간행한 책이다. 윤하중의 호는 이은시사(離隱時舍)로, 서양 천문학을 공부하여 『성력정수(星曆正數)』를 편찬하였다. 그는 『갑을록』뿐만 아니라 이유태(李維泰, 1607〜1684)와 송시열 사이의 논쟁에 대해 다룬 『임하총화(林下叢話)』 등 윤광소의 저술을 비롯하여 윤증의 제자 권구(權絿, 1658〜1731)의 『오복편람(五服便覽)』과 같은 소론 계열 도서의 활자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14권 7책의 오침안(五針眼) 선장본(線裝本)으로 표지는 만자문(卍字紋)이 새겨져 있다. 앞표지 좌측 상단에는 표제(表題)인 ‘갑을록’을 기재하였고 표제 아래에 각 책의 시작하는 권차(卷次)를 기재하였다. 광곽(匡郭)의 형태는 사주쌍변이고 반엽 기준 10행 20자의 주쌍행(註雙行)으로 작성되었다. 어미(魚尾)는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이다. 판심제는 어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판심제 하단에는 권차가 표기되어 있다. 장차(張次)는 하어미(下魚尾) 하단에 위치한다.
각 책의 첫머리에는 해당 책차마다 목록을 수록하였다. 1책부터 6책까지는 각각 2권씩 수록되었고, 7책은 권 13·14 이후에 윤하중과 김용빈(金容斌)이 주고받은 글을 담은 『갑을록속(甲乙錄續)』과 윤하중의 발문이 추가되었다. 본서에는 누락되었으나 타 소장처의 동일 판본에는 7책의 말미에 판권기가 존재한다. 해당 판권기를 참고하여 본서가 1925년 1월 15일 인쇄되어 6월 20일에 발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편집 겸 발행자로서 윤하중이 쓰여있고 발행소는 윤하중의 당호인 이은시사의 주소가 논산군(論山郡) 노성면(魯城面) 교촌리(校村里) 306번지로 기재되어 있다.
『갑을록』의 편찬은 당쟁이 격렬하게 전개된 조선 후기의 정국에서 소론으로서의 정치적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당론서는 새로운 출판환경 하에서 조선시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출판되며 일종의 역사서로 기능하였다. 한편 당론서는 후세에 의하여 자신의 조상과 그 소속 붕당에 대한 변호라는 비상업적 목적에서 책의 가격이나 홍보, 광고 등이 부재한 채 내용의 보전을 위해 활자본으로 재간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본서는 일제시기 출판된 활자본 당론서로서 이와 같은 사회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김용흠, '당론서(黨論書)'를 통해서 본 회니시비(懷尼是非) : 『갑을록(甲乙錄)』과『사백록(俟百錄)』비교, 역사와 현실, 85, 2012, pp. 111〜175.
• 윤민경, 일제하 조선시대 당론서 연구 : 『甲乙錄』·『黨議通略』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113, 2025, pp. 403〜448.| 등록번호 | 청구기호 | 권별정보 | 자료실 | 이용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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