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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백록(俟百錄)』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윤선거(尹宣擧, 1610〜1669)·윤증(尹拯, 1629〜1714) 부자를 둘러싸고 일어난 노론과 소론의 분쟁에 대하여 소론 측의 입장에서 서술한 당론서(黨論書)이다.
본서는 소론 완론계의 영수로 일컬어진 조태구(趙泰耉, 1660〜1723)의 후손 조중훈(趙重訓)과 조중윤(趙重潤)이 1925년에 목활자로 간행한 책이다.
2. 저자
당쟁이 격렬하게 전개되고 이에 따른 환국이 연속되던 조선 후기의 붕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당론서를 편찬하였다. 특히 송시열과 윤선거·윤증 부자를 둘러싸고 발생한 회니시비(懷尼是非)에 의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한 이후 당론서는 본격적으로 편찬되고 보급되었다. 노론 당인들은 강화도에서의 윤선거의 행적과 윤휴와의 관계를 두고 ‘의리(義理)’를 바탕으로 한 정책 논리를 통해 비판하였고, 소론 당인들은 윤선거와 윤휴의 관계를 ‘탕평(蕩平)’에 기반 논리로서 대응하였다. 이 논쟁은 당쟁이 일어나던 당시까지는 노론의 공세에 대해 소론이 대응하는 구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새로운 출판환경이 조성되며 당론서는 특정 붕당 내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증거로 사용되는 수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당쟁이 격렬하던 시기에는 논쟁을 주도하는 붕당의 주장이 큰 파급력을 가지는 반면 소수 붕당은 화를 면하기 위하여 수세적인 입장을 취해야 했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가 된 당론서는 역사서로서 출판 시장의 상품이 되거나 조상을 현창(顯彰)하고 그들의 언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다.
본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소론 완론계의 영수로 일컬어진 조태구의 후손인 조중훈과 조중윤이 1925년에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일반적으로 근대에 간행된 당론서는 당쟁이 일어나던 당시 편찬된 것을 근대에 다시 재편집한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본서의 내용은 1889년에 고친 영조(英祖)의 묘호를 사용하거나 1890년대 이후에 유통된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당의통략(黨議通略)』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20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본서의 편찬과 간행은 조중훈·조중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조중훈은 발문(跋文)에서 노론 측의 논리를 담은 『신임기년제요(辛壬紀年提要)』가 1922년에 간행된 것에 대한 위기감에서 『사백록』을 간행하였음을 밝혔다. 이는 더 이상 당쟁이 실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손 입장에서 소론의 정치적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편찬·간행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9권 5책의 오침안(五針眼) 선장본(線裝本)으로 표지는 만자문(卍字紋)이 새겨져 있다. 앞표지 좌측 상단에는 표제(表題)인 ‘사백록’을 기재하였고, 표제 아래에 책차를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오행(五行)을 사용하여 표기하였다. 서뇌(書腦) 하단에 전체 책수를 의미하는 표기(共五)를 기재하여 총 5책임을 확인할 수 있다. 광곽(匡郭)의 형태는 사주쌍변이고 반엽 기준 10행 20자의 주쌍행(註雙行)으로 작성되었다. 어미(魚尾)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판심제는 어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판심제 하단에는 권차(卷次)와 장차(張次)가 표기되어 있다. 각 책의 권수면(卷首面)에 이복현(李福賢)의 장서인이 있다.
1책의 첫머리에는 범례와 인용자료의 목록이 수록되었다. 1책에 권 1 숙종조(肅宗朝)·권 2 경종조(景宗朝), 2책에 권 3·권 4 경종조, 3책에 권 5 경종조, 4책에 권 6 경종조·권 7 영조조(英祖朝), 5책에 권 8 영조조·권 9 영조·정조조(正祖朝)·속편(續篇)이 수록되었다. 속편 뒤에 최정진(崔鼎鎭)의 후서(後敍)와 조중훈의 발문이 삽입되었다. 본서에는 누락되었으나 타 소장처의 동일 판본에는 5책의 말미에 판권기가 존재한다. 해당 판권면을 참고하여 본서가 1924년 11월 18일 인쇄되어 이듬해 1925년 3월 18일에 발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발행자로서 윤자철(尹滋轍)이 쓰여있고 발행소는 논산군(論山郡) 노성면(魯城面) 내사리(內舍里)의 박월성방(朴月成方)으로 기재되어 있다.
본서 외에도 『사백록』이라는 이름의 당론서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민진강(閔鎭綱, 1659〜1727)이 편찬한 『사백록』은 제목이 같으나 윤증을 비판하는 등 노론의 주장이 담긴 책으로, 서로 반대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민진강의 『사백록』과 같이 당쟁이 격렬하게 전개된 당시에 간행된 책들과 달리 본서의 편찬은 근대에 이루어졌다. 20세기 초반에 간행된 당론서는 새로운 출판환경 하에서 조선시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출판되며 일종의 역사서로 기능하였다. 한편 당론서는 후세에 의하여 자신의 조상과 그 소속 붕당에 대한 변호라는 비상업적 목적에서 책의 가격이나 홍보, 광고 등이 부재한 채 내용의 보전을 위해 활자본으로 재간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본서는 일제시기 출판된 활자본 당론서로서 이와 같은 사회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제: 김대경, 감수: 옥영정)
4. 참고문헌
• 윤민경, 일제하 조선시대 당론서 연구 : 『甲乙錄』·『黨議通略』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113, 2025, pp. 403〜448.| 등록번호 | 청구기호 | 권별정보 | 자료실 | 이용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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