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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례(家禮)』는 남송의 학자인 주희(朱熹, 1130〜1200)가 편찬한 대표적인 예서(禮書)로 사대부가 집안에서 지켜야 할 예법과 의례를 수록하고 있다. 소위 『주자가례(朱子家禮)』라고 지칭된다.

본서는 간행과 관련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간행 장소 및 연대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본서와 같은 7권 체제를 가진 『가례』가 효종 9년(1658) 처음 간행되었기 때문에 최소한 효종 9년(1658) 이후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2. 저자

『가례』를 편찬한 주희는 남송의 학자로 남검주(南劍州) 우계현(尤溪縣) 출신으로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號)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산인(雲谷山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이며, 성리학을 집대성하였기 때문에 보통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아버지는 금나라와의 화친 문제로 진회(秦檜, 1095〜1143)와 대립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던 주송(朱松, 1097〜1143)이다. 주송은 당대에 유명한 학자였던 나종언(羅從彦, 1072〜1135)의 문인으로 나종언은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의 제자인 양시(楊時, 1053〜1143)의 제자이므로 주희가 성리학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주희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웠으나, 14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유언으로 아버지의 동문인 호헌(胡憲, 1086〜1162), 유면지(劉勉之, 1091〜1149), 유자휘(劉子翬, 1101〜1147)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9살 때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21세에 동안현주부(同安縣主簿)를 제수받았다. 그러던 중 24살 때 아버지의 동문인 이동(李侗, 1093〜1163)의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에 매진하였다. 이후 스승인 이동이 세상을 떠난 34세에 장식(張栻, 1133〜1180)을 만나서 평생을 교유하였다. 이후에는 사록관(祠祿官)에 임명되어서 더욱 학문에 매진하였다. 46세에는 친구였던 여조겸(呂祖謙, 1137〜1181)과 함께 『근사록(近思錄)』을 저술하였다. 이즈음 여조겸의 주최로 육구소(陸九韶), 육구연(陸九淵, 1139〜1192) 형제와 아호사(鵝湖寺)에서 학술논쟁을 벌였다. 50세에는 남강군지사(南康軍知事)를 제수받아 다시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이 당시에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재건하였다. 이후 절동제거(浙東提擧)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다시 사록관에 임명되었고 이때 무이산(武夷山)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어 학문과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늦은 나이인 61세에 다시 장주지사(漳州知事)를 제수받아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이후 담주지사(潭州知事)및 시강(侍講)을 역임하였지만 권신의 미움을 받아 곧 파직되었다. 귀향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서 학문과 후학양성에 매진하다가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주희는 당나라 이래 북송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정호, 정이, 장재(張載, 1020〜1077)를 거쳐서 내려온 유학 사상들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으로 정리하였다. 이 성리학은 후대에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치,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희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경학과 관련해서는 『논어집주(論語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 『대학장구(大學章句)』, 『중용장구(中庸章句)』, 『사서혹문(四書或問)』, 『시집전(詩集傳)』, 『주역본의(周易本義)』, 『역학계몽(易學啟蒙)』 등이 있고, 사서(史書)로는 『통감강목(通鑑綱目)』, 그 외에는 『소학(小學)』, 『근사록(近思錄)』,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등이 있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7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오침안(五針眼)의 선장본(線裝本)이다. 표제(表題)는 “家禮”이며, 표제 아래에는 “單”이라고 묵서하여 완질임을 표시하였다. 판심제(版心題)는 “家禮”이다. 책판(冊板)을 통해 간행한 목판본(木板本)으로 광곽(匡郭)의 형태는 사주단변(四周單邊)이다. 계선(界線)이 있는 유계본(有界本)으로 반엽(半葉) 기준 12행 22자 주쌍행(註雙行)이다. 어미(魚尾)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본문 앞부분에 「가묘지도(家廟之圖)」, 「사당지도(祠堂之圖)」, 「심의전도(深衣前圖)」, 「심의후도(深衣後圖)」, 「착심의전양금상암도(着深衣前兩襟相掩圖)」 등을 포함한 31개의 가례도(家禮圖)를 수록하였다. 간기가 없어서 정확한 간행 연도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본서와 동일한 7권본 『가례』가 효종 9년(1658) 처음 간행되었기 때문에 효종 9년(1658) 이후 시점에서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가례』는 전체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 체제를 살펴보면, 본문에 앞서 주희가 작성한 「가례서(家禮序)」와 삽도인 「가례도(家禮圖)」를 먼저 수록하였다. 권 1에는 예와 관련하여 통설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인 「통례(通禮)」를 수록하였고, 권 2에는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冠禮)」를 수록하였다. 권 3에는 혼인식과 관련한 「혼례(昏禮)」를 수록하였다. 현재는 보통 혼례(婚禮)라고 쓰지만『주자가례』에서는 “昏禮”라고 기록하였다. 권4〜6까지는 장례식에 해당한 「상례(喪禮)」를 수록하였으며, 권 7에는 제사에 해당하는 「제례(祭禮)」를 수록하였다.

『가례』는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생활을 규정하는 중요한 의례서로 본서는 조선 후기 『가례』의 유통 및 간행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까지 전래되는 예법 의식에 대한 근원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해제: 김단일, 감수: 옥영정)

4. 참고자료

• 이문주, 『주자가례』의 조선 시행과정과 가례주석서에 대한 연구, 유교문화연구, 16, 2010, pp. 37〜61.

• 장동우, 『주자가례』의 수용과 보급 과정 : 동전 판본 문제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16, 2010, pp. 183〜206.

• 동양고전종합DB. https://db.cyberseodang.or.kr/front/main/main.do/ (접속일. 202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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