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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등]

朝鮮を鷄林と稱する故事

序

昭化四年十月刊行の武田氏著『明治十五年朝鮮事變と花房公使』にある花房太郞殿の序文 前略後省

凡例

목차

緖言 14

朝鮮京城事變の初電報 / 長崎 花房義質 15

外務卿井上馨殿 15

初電報の初號外 16

本紙と附錄 17

その後の第二報と第三告諭 18

第二報 18

第三報 19

變報に接して內閣諸公の會議 23

神功皇后, 加藤淸正, 西鄕隆盛の靈 24

諸新聞誌上に揭出されたる暴動顚末記 26

天然亭(事變時當の建物 現存は唯此一棟) 31

遭難記念碑(東京向島 木母寺) 35

戰死者の遺族に祭자料と略傳 36

遭難者警部岡兵一の手記 37

京城事變ノ經歷 37

在京城日本公使官圖 39

朝鮮暴徒我公使館を襲擊する圖 45

陸軍中尉堀本禮造暴徒と奮戰の圖 51

明治十五年十月 於東京曙樓記 54

諸新聞社よりの特派通信員 57

京都府知事北垣國道の紹介狀を持參せし特派員服部直 60

前驛遞總監前島密の紹介狀を持參せる岡島官藏 62

誤報を傳へし三新聞の發行停止 63

朝野新聞(明治十五年八月十九日) 67

電報の僞造者は罰金百圓 68

自由新聞社員が一私人としての報道 68

新聞記事制裁の新法文 70

私人の暗號電報を停止せし事 71

外務省大書記官竹添進一郞の書翰(花房家所藏) 72

遣淸特命全權公使가本武揚の書翰(花房家所藏) 74

歡迎準備の電報 75

朝鮮の國旗(花房公使の提案) 76

朝鮮ノ國旗ハ我之ヲ助ケテ速ニ制定セシムヘキノ議案(花房子爵藏) 76

第一圖 時事新報所載 78

第二圖 朝鮮郵券模樣 78

朝鮮國旗 79

日英親好の輝きと見るべき美談 81

下關に於ける戰死者祭典 83

祭文 / 竹中所房 83

祭仁川死難人文 / 花房義質 84

祭文 / 近藤眞鋤 84

濟物浦に於ける戰死者祭典 85

遭難者自署集 86

祭漢城仁川死難者文 / 辨理公使 花房義質 87

諸官省より出入を差止められし新聞社員 88

暴風雨を冒して舟に乘り難を避くる圖 90

遭難者石幡東嶽の自詠詩 91

七月二十三日漢城記事 91

同月二十四日仁川記事 91

暴徒に說諭を加へたるが爲め殺されし人 92

從軍願と獻金願の多かりし事 93

朝鮮開化黨の一人たる金玉均 95

激論のためか演說會の中止解散 97

韓韓농舊連衆 98

下卑たる比喩的記述の平和說 99

暴動の張本人大院君(李夏應)の惡虐 101

大院君の性格を賞揚せし辯護說 102

馬建忠は勅命にて大院君を拘引す 103

頑虎の囚はれ 104

淸國皇帝が李夏應を拘置せしめし理由 105

毒殺と傳へられたる王妃の隱顯 107

虛傳の主唱者は大院君か 110

千金丹が時變の影響を受けし餘談 111

昇級慰勞祭祀贈與等の特典 112

朝鮮事變 諸新聞雜誌所載論說一覽表 114

東京橫濱每日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十月十四日間) 115

東京日日新聞 所載論說(自七月三十日至十月十二日間) 115

郵便報知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十月十三日間) 117

朝野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十月二十四日間) 118

明治日報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九月二十九日間) 118

時事新報 所載論說(自七月三十一日至十月十九日間) 119

自由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十月二十九日間) 120

日の出新聞 (東京) 所載漫文(自八月一日至九月八日間) 121

中外物價新報 (東京) 所載論說(自八月三日至九月七日間) 121

日本立憲政堂新聞 (大阪)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十月十九日間) 122

大東日報 (大阪)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十月十四日間) 122

事變當時の東京新聞 123

事變當時の各地新聞 124

京都滋賀新報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九月二十日間) 125

山形新聞 所載論說(自八月二十六日至九月十一日間) 126

陸羽日日新聞 所載論說(自八月四日至九月九日間) 126

新瀉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三日至九月十五日間) 126

靜岡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三日至九月十九日間) 127

函右日報 所載論說(自八月三日至十月十八日間) 127

岐阜日日新聞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九月十日間) 128

土陽新聞 (高知) 所載論說(自八月三日至八月二十日間) 128

江南新誌 (高知日刊) 所載論說(自九月五日至九月九日間) 129

東京輿論新誌 所載論說(自八月五日至十月二十一日間) 129

近事評論 所載論說(自八月三日至十月十八日間) 130

扶桑新誌 所載論說(自八月六日至十月一日間) 131

江湖新報 所載論說(自八月一日至八月十日間) 131

政事月報 所載論說(自九月至十月間) 132

東京新誌 所載漫文(自八月五日至九月十六日間) 132

自由新誌 (金澤) 所載論說(自八月十五日至十月三日間) 132

紫溟雜誌 (態本) 所載論說(自八月十一日至十月一日間) 133

東京諸大新聞の論調槪觀 134

遭難當夜に於ける英氣の劍舞 150

時論一斑 151

事變突發當初の堅實論 151

大東日報記者原敬の平和主義朝鮮論 154

朝鮮論 第一 / 原敬 稿 155

溫和說を駁せし改進黨の新聞紙 159

開戰論者が平和論者に變ぜし事 161

韓國不可征論 / 小官里女 163

讀賣新聞に出たる漫畵(明治十五年自八月十五日至九月七日間) 164

斥洋攘夷の碑を毁たしむ 165

北支那日日新聞の日淸戰爭豫言論 167

新聞社說の續稿差止 169

청령と鷄, 豚や鷲 169

事變記事の多かりし代表として擧げる時事新報の論說と雜報 170

虎肉と豚肉で日本酒 182

新聞の記事論說を拔載せし單行本 183

當時の事變を描ける綿繪の數數 186

賣れ行き最も多かりしと云ふ毒殺誤傳の綿繪 188

韓紅大倭錦 筋書 / 방川春수 作 189

演劇に擬したる俳優姿の遭難諸士 192

親日派尹雄烈の避難逃走と其密報手書 194

亡命者尹雄烈の談話 197

これけチ-からぽん 204

御用新聞社を罵る民權派の新聞 205

御用新聞と認められし時事新報 206

問罪使節として再渡韓の花房公使 207

問罪使一行仁川港に著する圖 208

鼻總のシツぺい 211

朝鮮政府に對する花房公使の談判始末記 212

花房公使朝鮮國王に談判する圖 218

追加要求に對する朝鮮政府の承認書 221

我國と朝鮮國との和議修好條約(諸新聞所載 法規分類大全參照) 222

和議修好條約の成立せんとする圖 226

償金五十萬圓その割算 227

修信使として朴泳孝の來朝 228

神戶に於ける花房公使招宴會 229

橫濱に於ける花房公使歡迎會 230

花房母堂の歡喜と感泣 232

天皇陛下に謁見 恩賞を賜はる 233

花房公使に對する祝賀會 236

花房公使の歸京を祝する論文 239

花房公使(遭難直後於長崎撮寫) 243

花房公使の履歷 244

墓銘 250

事變關係の詩歌俳句集 252

近藤眞鋤筆 254

朝鮮變報を詠ぜし簡明の狂詩 259

通信員特派廣告の一例 260

遭難死者弔祭廣告の一例 261

講談興行廣告の一例 262

圖書出版廣告の一例 263

附錄 滿五十年記念に際して壬午事變當時の關係者武田尙翁及中田敬義翁その回舊錄と新感想記 264

壬午朝鮮事變ノ所感 / 遭難者 武田尙 266

跋 272

[판권기 등] 274

뒷표지 278

해제보기

1. 개요

『임오계림사변(壬午鷄林事變)』은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 당시 일본의 신문·잡지에 실린 기사, 논설, 삽화, 문서, 시가 등을 선별하여 소화 7년(1932)에 단행본으로 편찬한 자료집이다.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부속 메이지신문잡지문고 주임자였던 미야타케 가이코쓰(宮武外骨, 1867〜1955)가 편찬하고, 하나부사 다로(花房太郎, 1873〜1932)가 발행하였으며, 소화 7년(1932) 7월 23일 비매품으로 간행되었다.

범례에 따르면 편찬자는 1882년 7월 말부터 11월 무렵까지의 신문·잡지 150∼160종 가량을 조사하고, 그 가운데 임오군란 관련 기사가 확인되는 약 70종의 자료에서 기사와 도판을 선별하였다. 수록 내용은 일본 공사관 피습 관련 기록, 조난자 기록, 하나부사 공사의 교섭 과정, 조일 간 화의수호조약 관련 문서, 신문 논설, 만화, 니시키에(錦繪), 광고, 와카(和歌), 교카(狂歌), 하이쿠(俳句) 등에 이른다.

『임오계림사변』은 임오군란에 대한 정치·외교적 기록인 동시에, 사건 당시 일본 사회의 언론 보도, 삽화·니시키에·만화 등 시각 자료, 문학적 반응을 함께 보여주는 복합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2. 저자

『임오계림사변』은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 당시 일본의 신문·잡지 자료를 선별하여 엮은 편찬 자료집이다. 판권기에 따르면 편찬자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부속 메이지신문잡지문고 주임자였던 미야타케 가이코쓰이며, 발행자는 하나부사 다로이다.

미야타케 가이코쓰는 일본 근대의 언론인·저술가이자 메이지신문잡지문고의 주임자로, 신문·잡지 자료의 수집과 보존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본서의 범례와 서언에 따르면, 그는 하나부사 다로의 의뢰를 받아 명치 15년(1882) 7월 말부터 11월 무렵까지의 신문·잡지를 조사하고, 그 가운데 임오군란 관련 기사와 도판을 선별하여 책으로 편찬하였다.

발행자인 하나부사 다로는 일본의 해군 군인·화족(華族)으로,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1842〜1917)의 장남이다. 하나부사 요시모토는 근대 일본의 외교관으로, 조선과의 수교 교섭에 관여하였고 임오군란 당시 조선 주재 일본 공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하나부사 다로는 서문에서 임오군란 발발 50주년을 맞아 다시 기념 출판을 기획하게 되었고, 메이지신문잡지문고의 소장 자료, 하나부사 가문의 소장 서류와 니시키에 등을 활용하여 본서를 간행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의 표지는 검은색 천 장정의 양장본으로, 중앙에 책명 ‘임오계림사변(壬午鷄林事變)’을 은색 초서체로 세로 배치하였다. 하단에는 붉은색으로 ‘신문잡지소재록(新聞雜誌所載錄)’이 표기되어 있어, 본서가 신문·잡지에 실린 자료를 발췌·수록한 편찬 자료집임을 보여준다. 좌상단에는 자색 방형인 ‘수명공시(守命供時)’가 전서체로 표기되어 있다.

편제면에는 서명 하단에 ‘명치십오년칠월이십삼일(明治十五年七月二十三日)’과 ‘소화칠년칠월이십삼일(昭和七年七月二十三日)’이 좌우로 배치되고, 그 사이에 ‘50年’이 크게 적혀 있어, 임오군란이 발생한 명치 15년(1882)과 본서가 간행된 소화 7년(1932)의 시간적 간격을 드러낸다.

내용 체제는 서문, 범례, 총목차, 서언, 본문, 부록, 발문, 판권기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하나부사 다로가 본서를 간행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으며, 미야타케 가이코쓰가 작성한 「서언(緒言)」에서는 본서가 후대의 역사 서술이 아니라 사변 당시 신문·잡지 기사 자체를 발췌하여 수록하는 방식으로 편찬되었음을 설명한다. 범례에는 본서의 조사 범위와 선별 방식이 제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편찬자는 하나부사 자작의 의뢰를 받아 명치 15년(1882) 7월 말부터 11월 무렵까지의 신문·잡지 150∼160종 가량을 조사하였고, 그 가운데 임오군란 관련 기사가 확인되는 약 70종의 자료에서 기사와 도판을 선별하였다.

본문에는 임오군란 관련 전보, 신문 기사, 논설, 삽화, 니시키에, 만화, 서한, 조약문, 인물 관련 기록, 광고, 시가·하이쿠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총목차를 보면 「조선 경성사변의 첫 전보(朝鮮京城事變の初電報)」, 「여러 신문지 상에 게재된 폭동 전말기(諸新聞紙上に揚出されたる暴動顛末記)」, 「조선 폭도가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는 그림(朝鮮暴徒我公使館を襲撃する圖)」, 「여러 신문·잡지 소재 논설 일람표(諸新聞雜誌所載論説一覽表)」, 「동경 주요 신문의 논조 개관(東京諸大新聞の論調概觀)」,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만화(讀賣新聞に出たる漫畫)」, 「당시의 사변을 그린 여러 니시키에(當時の事變を描ける錦繪の數々)」, 「일본과 조선국의 화의수호조약(我國と朝鮮國との和議修好條約)」, 「사변관계의 시가·하이쿠집(事變關係の詩歌俳句集)」, 「사변 관계 광고의 예(事變關係廣告の例)」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본서는 임오군란을 정치·외교적 사건으로만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 언론의 보도 양상, 논설의 방향, 도판 자료, 문학적 표현을 함께 보여주는 복합 자료집임을 알 수 있다. (해제: 임윤수, 감수: 옥영정)

4. 참고자료

• 이민희, 20세기 전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변화와 아시아적 서사: 『임오계림사변(壬午鶏林事変)』을 중심으로, 비교문학, 94, 2024, pp. 99〜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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