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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30.953-22-7

- 서명: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

- 편/저자: 노구치 유키오

- 발행처: 랩콘스튜디오(2022-06)

서평
 ‘마약 같은 엔저 효과’ 탓에 가난해진 일본
서평자
 이창민,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발행사항
 613 ( 2023-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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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믿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진 일본
제2장 ‘엔저라는 마약’에 취해 개혁은 뒷전
제3장 ‘저렴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경제지표
제4장 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것은 물가가 상승하지 않기 때문
제5장 일본이 침체한 원인을 미국을 통해 배운다
제6장 디지털화에 뒤처진 일본
제7장 일본을 망가뜨린 엔저 20년사
제8장 일본은 1%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제9장 고령화 정점에 맞선다-2040년 문제의 심각성
제10장 미래를 향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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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약세 상태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익을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으니 훨씬 편한 만큼, 마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기술개발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라는 ‘수술’이 아니었을까.” - 57쪽 이 책의 저자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는 1995년에 출간한 『1940년 체제(1940年體制)』를 통해 세간에 널리 이름을 알린 경제학자이다. ‘1940년 체제’란 전후 일본경제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업, 경영, 노사관계, 민관관계, 금융제도 등이 1940년대 전시 체제하에서 형성되었다는 주장이다. 노구치는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1940년 체제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그의 저서 『1940년 체제』가 1990년대 불황의 원인을 진단한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그 이후에도 20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는 불황의 원인을 파헤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년 불황의 원인은 20년 엔저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로 인해 엔화 강세로 전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시작된 환율개입은 아베노믹스 이후 양적·질적 완화라는 명목하에 더욱더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노구치는 “아베노믹스의 엔저 정책 때문에 일본이 가난해졌다”라고 단언한다. 대체 엔저는 왜 일본을 가난하게 만든 것일까?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면 기업의 이익과 주가는 상승하게 된다. 그런데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기업이 손쉽게 환차익을 얻게 되면서 기술혁신과 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은 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마약 같은 엔저 효과’에 취한 기업은 정부를 압박해서 엔저 정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환차익을 노동자에게 환원하지도 않는다. 결국,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임금은 오르지 않고 수입 물가만 상승하니 생활수준이 하락해서 예전보다 가난해졌다고 느끼게 된다. 노구치는 금융완화 정책으로 물가를 끌어올려 경제성장을 견인하려는 일본 은행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어야 임금이 오르고, 임금이 오르면 수요가 늘어나면서 비로소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노구치의 말대로라면 일본 정부와 은행은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거꾸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노구치는 미국과의 비교를 통해 일본의 침체 원인을 지적한다. 미국의 거대 IT 기업들은 정보나 데이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본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경제를 선도하는 ‘데이터 자본주의’는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를 가져왔고 이 분야에서 대규모 고용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고도 서비스 산업 분야에 고용된 사람들은 고소득을 얻고 구매력이 큰 소비자로서 국내외 제품을 소비하고 있다. 미국처럼 생산성이 상승해야 임금이 올라가고 경기가 살아나면서 물가도 회복되는 것인데, 일본은 생산성이 하락하는 가운데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엉뚱한 엔저 정책만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최근 몇 달간 상황은 더욱 급변했는데, 기록적인 엔저 속에서 사상 최대 환차익을 올리는 기업들 옆에는 ‘엔저 도산’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생산성과 상관없이 환율변화로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성이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는 것은 뒤처진 디지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IT 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디지털화의 물결에서 홀로 낙오하고 말았고, 고등교육력 또한 미국의 1/7, 한국의 절반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추락하였다.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될까? 지금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실질성장률 2%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노구치의 계산에 따르면 기술진보율을 1%로 가정해도 잠재성장률은 0.6%에 지나지 않는다. 고령화가 정점에 달하는 2040년 위기를 극복할 뾰족한 대책도 없다. 1인당 사회보장비용 부담을 40%까지 늘려도 가난한 노후를 피할 길이 없다. 암울한 예측뿐이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순간을 겪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노구치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겸허하게 외국에서 배우고자 했던’ 50년 전 일본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일본을 향한 노학자의 안타까운 절규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