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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123.3-23-1

- 서명: 운이란 무엇인가 : 행운과 불운에 관한 오류와 진실

- 편/저자: 스티븐 D. 헤일스

- 발행처: 소소의책(2023-01)

서평
 잘 되면 내 덕, 못 돼도 내 탓
서평자
 이종환,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발행사항
 638 ( 2023-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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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라케시스의 제비뽑기와 운의 역사
2 ∣ 운과 실력
3 ∣ 양상 이론과 통제 이론
4 ∣ 도덕적 운
5 ∣ 지식과 우연한 발견
6 ∣ 운의 비합리적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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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행운이 함께하길 기도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 대부분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는 의례적인 말이다. ‘미신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이다. 운의 종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운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잘못된 낡은 패러다임의 흔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 311쪽 고등학생 때 일이다. 수학의 확률 문제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하기보다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방법을 고민했다. 시험 범위에서 확률은 약 1/3 정도를 차지했다. 확률을 제외한 나머지 범위를 열심히 공부하고 확률은 포기하여 수학 과목 시험 준비에 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시험 범위의 1/3이 확률 부분이니 전체 문제에서 1/3 정도 문제가 확률에 관해 출제될 것이다. 확률 문제를 잘 찍든 풀든 반타작만 하더라도, 나머지 범위의 문제에서 승부를 걸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테다(확률 부분에서 문제가 나올 확률 계산을 이렇게 하느니 확률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시험에는 확률 문제가 거의 출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획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확률 부분에서 문제를 거의 내지 않으신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운이란 무엇인가』의 스티븐 D. 헤일스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과학까지 인류 사상 발전 과정을 짚어가면서 운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들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란 수학 법칙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운 또한 예측할 수 있는 법칙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인과 법칙으로 꽉 짜여 있는 세계에서는 우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연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사실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원자 차원에서부터 무작위성이 존재함을 보였다. 그리고 정확한 미래의 예측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카오스 이론이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여전히 운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확률 이론, 양상 이론, 통제 이론이라는 운에 대한 전통적인 세 가지 이론을 검토한다. 그리고 운에 대한 이론들이 진리 발견 과정, 도덕적인 운, 인식론적인 운 등의 문제에서 운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운의 실체를 밝혀줄 수 있는 이론은 없기에 운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비논리적 추론에 의한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3권 5장에서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던, 어느 희극 작가의 격언으로 전해지던 ‘자발적으로 악한 사람도 없고, 마지못해 지극한 복을 받는 사람도 없다’라는 말을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격언의 뒷부분은 동의하지만, 앞부분은 반대한다. 지극한 복은 자발적으로 기꺼이 받으려 하기에 자신의 책임과 덕의 결과다. 같은 이유에서 한 사람이 악하게 되는 것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그 자신의 탓이다. 사람들은 좋은 일은 자기 탓, 나쁜 일은 남 탓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도 이런 인간의 경향성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금수저와 같은 행운처럼 외부의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티븐 D. 헤일스도 일어난 사건을 운으로 설명하려는 우리의 일반적 태도가 오류라는 사실을 보이면서 삶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한다. 저자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도 선뜻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는 나쁜 일에 대해 남을, 상황을, 운명을, 불운을 탓하는 데 능하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책임지려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운이란 사실 허상이고, 이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비롯하는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운에 대한 이론의 한계를 보이면서 자기 삶에 책임지는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내가 고등학생 시절 그 수학 시험을 잘 본 것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확률 이외의 범위를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내 실력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처럼 생각하자니 좀 미안하다. 미신 같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그 수학 시험에서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