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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20.973-23-3

- 서명: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선동의 수사학

- 편/저자: 패트리샤 로버츠-밀러

- 발행처: 힐데와소피(2023-03)

서평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선동 문화 극복과 숙의(熟議)
서평자
 이종곤,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행사항
 641 ( 2023-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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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민주적 숙의의 원칙들
2. 선동을 구별하는 잘못된 방법
3. 선동이란 무엇인가
4. 선동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5. 선동의 사례
6. 선동이 문화가 되는 과정
7. 선동에 맞서는 방법과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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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당연히 항상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선동만 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나쁜 것이다.” - 136쪽 이 책은 후주(後註)까지 포함하여 15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에 담긴 선동(demagoguery)과 민주주의(democracy)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통찰력은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다양한 집단 간 혐오와 반목이 일상화된 현시점에 큰 함의를 지닌다. 1장에서 5장까지는 선동이 무엇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동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공적 담론의 기본적인 원칙을 준수하며 숙의(熟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주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즉,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포용할 부분은 포용하며,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민주주의에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선동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이원화하고, ‘악한’ 외집단을 척결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선동은 외집단과의 숙의보다 훨씬 쉽고, 또 즐겁기까지 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명확히 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감정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선동은 정치를 비정치화한다. 정책에 대한 숙고 대신 우리와 반목하는 악당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그릇된 당위성만이 남게 된다. 선동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행해져 왔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선동은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고 일견 명쾌해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의 행동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책의 6장을 통해 저자는 선동은 질병이나 전염병이 아니며, 오히려 호수의 조류(藻類; algae)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호수의 조류는 수생 생물들의 영양원인 유기물의 원천이다. 하지만 대량 번식하면 햇빛을 차단하고, 호수의 산소 소비량을 늘려 물고기가 떼죽음하게 된다. 즉, 선동은 늘 좋은 것도, 늘 나쁜 것도 아니다. 선동은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사회로부터의 불합리한 대우에 저항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언제까지나 선동만 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나쁜 것이다.”(136쪽) 우리는 절대적으로 틀리지 않고, 우리를 핍박하는 그들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선동의 결과는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칠 뿐이다. 마치 대량으로 번식한 조류처럼. 2023년 현재 우리는 선동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국가에서 포퓰리즘에 기반한 국가수반들이 선출되고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 역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7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동의 문제는 선동가에 있지 않고, 선동 문화에 있다. 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을 ‘악한’ 외집단으로 설정한 선동 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가졌을 뿐, 선동 문화가 부재한 곳에서는 아무런 권력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즉, 외집단을 악으로 규정하고, 배척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선동 문화 내에서만 선동가는 활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와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악당’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다양한 집단들이 혐오 감정을 주고받고, 사회가 날로 양극화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에 큰 함의가 있다. 내가 (혹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사실들은 옳지 않을 수 있으며, 옳은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한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혐오 감정으로 타 집단과의 대화 여지를 남기지 않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선동 문화가 일반화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선동가가 활개 칠 것이며,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들은 크게 손상될 것이다. 저자가 강조한 것과 같이 선동은 늘 좋은 것도, 늘 나쁜 것도 아니다. 적당한 선동은 소외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데 있어 긍정적 에너지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외집단에 대한 혐오와 대화 없는 선동만이 가득한 사회는 조류로 뒤덮인 호수와 같이 천천히 부패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