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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06.85-23-7

- 서명: 가족을 폐지하라 :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법

- 편/저자: 소피 루이스

- 발행처: 서해문집(2023-04)

서평
 가족 ‘없는’ 풍요에 대한 용감한 상상
서평자
 부영,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원
발행사항
 645 ( 2023-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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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난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구!
어떤 가족을 폐지한다는 거야?
가족 폐지론의 간략한 역사
가족의 대안도, 확장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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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폐지 운동은 아무 걸림돌 없는 완벽하고 보편적인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당신이 각본을 뒤집어서 오히려 가족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가족은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 하고, 우린 모두 경쟁적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하는 작은 생물학적 팀의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 - 37쪽 가족은 정말 ‘각박한 세상 속 유일한 안식처’일까? 자신이 속한 가족을 지키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한 노력은 현대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권장되는 것을 넘어 당연한 의무로써 통용된다. 설사 대안 가족을 외칠지언정 가족을 거부하거나 가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가족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 소피 루이스는 아프리카 선주민의 공동체 등 여러 사례를 들며 이를 방증한다. ‘가족’이 근대화 과정에서 본질, 보편을 가장한 ‘정치적’ 제도로서 발명되고 몸집을 불려 왔다고 밝힌 페미니즘 연구들도 근거를 더한다. 오늘날 ‘가족 해체’를 염려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친‘가족’주의자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가족 제도가 이렇게 열성적인 노력 없이는 위태로울 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것임을 가늠케 한다. 루이스는 이처럼 가족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가족을 둘러싼 지금의 현실에 열정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가족이 문제라는 점에 우선 의견을 모았다면, 우리는 현재의 큰 틀을 유지한 채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고 선택지를 다양화하는 등 그 내용을 개선하는 데 힘쓸 수도 있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 형태를 모색할 수도 있다. 2장에서 루이스는 단호하게 후자를 이야기한다. 루이스가 이 책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어를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음에도 추론하건대, 그는 가족의 핵심이 배타성에 있다고 본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 돌봄과 지지 행위, 정서적 애정, 안정, 친밀감 등이 가족 내부의 사적인 문제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국가가 복지 전반을 개별 가족 단위에 전가하면서 국가의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족 밖의 개인이나 집단을 지원하는 제도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채로 남는다. 물론 세대에서 세대로 넘어가며 더욱 강화되는 불평등과 계급 재생산의 문제는 덤이다. 그렇다면 가족은 자연스러운 결과도 아닌 데다 합리적이거나 이득을 주는 선택도 아니다. 이와 같은 가족의 핵심이 바뀌지 않는 한, 이성애 핵가족과는 사뭇 다르게 보이는 가족 형태가 제도적으로 승인되더라도 상황은 유사할 것이라는 게 루이스의 판단이다. 가족 자체가 문제라는 이러한 입장은 루이스만의 독창적 발명품은 아니다. 3장에서 보듯 저자의 주장은 기원전 플라톤에서부터 20세기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21세기 트랜스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 긴 가족 폐지론의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루이스는 가족을 없애야만 하는 근거들을 면밀하게 제시하기보다는 폐지론자들의 계속된 시도와 좌절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남기는 방식을 택한다. 가족 폐지 운동에도 역사가 있다는 선언이 그 주장에 정당성을 곧바로 부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주장의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물론 루이스가 가족에 반대한다고 해서 사회적 관계 일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족 대신에, 더 공정하고 평등하면서도 이타적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가족의 중요성을 내려놓고 그 어떤 가족도 없는 사회에서, 이전까지는 가족을 지키는 데 소진되었던 에너지를 다른 집단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쓰자고 강력히 주문한다. 그렇다면 가족 대신 필요한 사회적 관계란 어떤 모습일까? 루이스는 4장에서 혈연의 가치가 배제된 근족, 동지, 공모자적 관계를 형성하자고 제안한다. 또 언어와 사고 구조를 변화시키고, 혈연과 무관한 지원 구조를 마련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청사진이 구체적이지는 않다. 만일 가족 폐지 후의 다음 단계로서 완전히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읽어내길 기대하고 이 책을 집었다면 다소간의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종의 가족 폐지 입문서이자 선언문으로서, 가족 폐지론의 오랜 역사를 되짚고 가족을 전면 폐지하라는 주장의 의미가 지금 시대에도 아직 유효함을 한 번 더 상기하는 데 그 가치가 있다. 만일 가족 제도가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을 넘어서는 데까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던 독자라면 이 책이 새로운 사고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