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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179.7-23-4

- 서명: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 편/저자: 스테파니 그린

- 발행처: 이봄(2023-06)

서평
 조력사망: 의사의 눈으로 지켜본 시간
서평자
 이지은,숭실대학교 법학과 부교수
발행사항
 650 ( 2023-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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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시작
2부 여름
3부 가을에서 겨울로
4부 봄
5부 다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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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 일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기를 바라는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 410쪽 2016년, 캐나다에서는 사망 시기를 인위적으로 앞당겨 생을 마치고자 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조력하여 환자의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가 의료조력사망(MAiD)이라는 이름으로 합법화되었다. 이 책은 의료조력사망이 합법화된 초기에 캐나다의 한 의사가 환자들의 임종을 도우면서 남긴 일년여 간의 기록이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기 위한 의료적 도움을 받을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연명의료 중단과도 또 다른,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의사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치료가 아닌 사망에 조력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직업적 사명에 반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산부인과에서 신생아 치료가 전문분야였던 이 책의 저자 스테파니 그린은 의료조력사망의 합법화를 계기로, 환자의 임종을 돕는 의사로서 일하고자 결심한다. 생명의 수태와 탄생을 돕던 의사가 생명을 스스로 끝마치는 과정에 조력하게 되는, 어찌 보면 극적인 전환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힌다. 조력 사망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중략) 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그리고 사무실에서 캐런과 함께 있을 때는 각각의 조력 사망을 ‘딜리버리delivery’*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산부인과 의사였던 내 전력을 긍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나의 역할을 어떻게 보는가를 반영하는 약칭(略稱)이기도 했다. 예전에 나는 삶을 향한 아기의 출산을 도왔다. 그리고 이제는 한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 죽음을 향해 가는 일을 돕고 있었다. 나는 그 대칭성이, 그 용어가 환기하는 것이, 그것의 시정(詩情)이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의 환자들도 그 용어를 마음에 들어했다.(161-162쪽) 그 이름이 가지는 부정적 함의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지만, 조력사망제도의 도입 시에 현실적으로 우려되는 바는 무엇보다 환자의 자율성이다. 고통과 신체 능력의 약화로 인해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력 사망을 선택하는 게 아닌가. 조력 사망을 제도화함으로써 사회적 취약계층이 치료받지 않고 여생을 일찍 마감하는 것을 촉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불가피하다. 이 책의 사례들은 가족과 친지가 환자의 선택을 지지하고 애도하는 가운데 임종을 준비한 경우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 나타난 긍정적인 시각과 진지한 노력은 의료조력사망이라는 제도하에서 필요한 의사의 역할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조력 사망을 간절히 원하던 환자가 신청 절차를 밟던 중에 의사표시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조력 사망의 실행을 어쩔 수 없이 거부하여야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고통을 덜어주어야 하는 직업적 의무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 당위성 사이에서 분열”되는 경험(282쪽)을 하는데, 그러한 사례를 다른 의사들과 공유하며 세부적 사항에 대해 재검토를 해나간다. 이러한 시도는 임상적 경험의 축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적 요건의 추상성이 가지는 문제- 자율성, 환자의 고통, 치료 불가능성이라는 요건의 모호성-를 해결하는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책에는 조력 사망을 선택한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웃과 친지를 초대하여 작별을 고하는 노인, 임종의 순간 문제아였던 손자를 큰소리로 질책하는 할머니, 조력 사망의 절차가 시작된 직후에야 딸에게 화해의 언사를 건네다가 끝맺지 못하는 어머니, 종교적인 이유로 조력 사망을 반대하여 다른 가족들의 ‘살해’를 격렬히 비난하는 가족구성원……그러한 극적인 순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감동적이지만, 환자와 가족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다가도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지나가든 내가 그 방안에서 가장 침착하고 가장 자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상기”하는(58쪽) 의사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하지만, 임종에 면한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초점을 두는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조력행위를 하는 일이 “어떻게 죽기를 바라는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410쪽)는 독백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 ‘delivery’는 출산 외에 ‘배달’, ‘인도’, ‘전달’을 뜻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조력 사망’을 ‘delivery’로 부름으로써 산부인과 전문의로서의 일과 MAiD 일을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