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표지이미지

- 청구기호: 301.0951-23-53

- 서명: 공정감각 :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 편/저자: 나임윤경 외 13인

- 발행처: 문예출판사()

서평
 공존 없는 공정에 대해 묻다
서평자
 이선민,시청자미디어재단 선임연구원
발행사항
 672 ( 2024-04-03 )

목차보기더보기

들어가며 - 자꾸 삭제되니 책으로 만들어버리자
1. ‘언더도그마’라는 보수 담론의 질주
2.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이들에게
3. 3루 출생을 3루 안타로 착각하는 이들에게
4. 21세기, 아직도 이동권 없는 이들에게 ‘문명’을 논하다니
5.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 헨델, 부모가 동성이라 클래식 음악이 비정상은 아니듯
6. 어느새 다가온 기후 위기를 실감한 당신의 선택은?
나오며 - 반지성주의로부터 반페미니즘, 그리고 ‘그’ 공정

서평보기더보기

“좀 다르고, 다양한 동시대 청년들의 글을 통해 지금의 ‘공정감각’이 사실은 ‘공존감각’을 지워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었다. 다양한 존재(와)의 공존 없는 공정의 결과는 무엇일까. ‘어떤’ 존재들을 온전히 존재치 못하게 하는 ‘그’ 공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공정이란 얼마나 무의미하며, 무엇보다 이율배반적인가와 같은 질문에 개인과 공동체가 나름의 답을 찾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 24~25쪽 공정은 우리 시대의 뜨겁고 첨예한 개념 중 하나다. 동시에 공정만큼 오용되는 개념도 없다. 누구나 공정을 갈망하고 필요성을 설파하지만, 공정에 대한 이해는 때로 무지에 가깝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공정에 관한 텅 빈 담론 속에서 책 『공정감각』은 ‘가장 공정에 민감한’ 세대로 지칭되는 20대의 시선으로 노동, 성차별, 장애, 학벌주의 등의 이슈를 통해 ‘공정’의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은 한 대학의 수업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사립대에서 학생이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로 수업권이 침해됐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일어났다(1심은 패소했다). 대개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지만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소송에 동조하거나 노동자를 저격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 ‘미화원의 고임금 설’을 비롯해 글 대부분이 가짜, 거짓, 짜깁기 정보였으나 사실을 확인하려거나 알려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를 목격한 이 대학 교수는 익명에 기댄 조롱과 혐오가 아닌 공론의 장에서 대화하자는 취지로 ‘사회문제와 공정’이라는 수업을 개설했고, 수강생은 에브리타임에 청소노동자 시위 등에 관한 글을 올렸다. 그러나 글은 ‘다른 목소리와 이견은 용납하지 않는’ 커뮤니티에서 곧바로 삭제됐고, ‘다른 생각’들을 복원해 책으로 남기는, 교수와 학생의 공동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공정감각』은 ‘공정’을 앞세운 수많은 담론이 타인과의 ‘공존’의 감각을 지워내는 현실에 주목해, 다양한 존재와의 공존 없는 공정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어떤’ 존재들을 온전히 존재치 못하게 하는 ‘공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공정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이율배반적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구체적으로 노동자 시위와 비정규직 이슈, 학습권과 생존권의 문제, 사회적 소수자와 시민으로서 연대, 대학의 위계와 학벌의 서열화, 성차별과 페미니즘, 장애인과 이동권 시위, 성소수자 이슈, 채식과 기후 위기 등 20대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때로는 묵직한 고백으로, 때로는 진득한 설득으로 풀어간다. 대학 입학을 유일하고 불변하는 능력의 인증으로 여기는 학벌 서열화에 대한 지적, 학벌은 개인의 성취가 아닌 다양한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이 작동한 결과이고, 이러한 자본 또한 특권일 수 있다는 성찰(3루에 태어난 것을 3루 안타로 착각하는 이들에게), ‘인천국제공항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쌓아 올린 숙련된 노동은 배제한 채 정규직 입사 시험으로 단일화하는 능력주의 행태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일각의 ‘공정’ 논의가 얼마나 얄팍한지를 깨닫게 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를 ‘정치적’이라고 낙인찍는 정치 탈각화 기류에 대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 일반에 대한 정의에서 인간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이고, 소수자에게 자원을 배분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행위’라며 사회적 소수자를 비가시화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라고 지적한다. 책은 공정의 논의를 인간다움을 요구하는 장애인, 노동자, 이태원 유가족 등 사회적 소수자의 연대와 시민으로 살아가는 삶, ‘공존’에 대한 논의로 확장한다. 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당장 출근 시간대 지하철역에서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일상의 문제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의 고통에 연대한다는 것은 나와 맞물린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는지 감각하는 일이고 ‘독립적인 삶의 주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 사회가 어떤 모양인지 그려내는 작업이고, 이 과정에서 많은 존재의 권리가 … 겹쳐지기도, 부딪히기도 한다고. 그런 면에서 ‘삶은 정치적’이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권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포개서 더 두터운 권리로 만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그것이 정치고,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삶의 방식”(70~71쪽)이라고. ‘공존을 통한 공정’을 사유하는 20대의 ‘다른’ 목소리는 ‘전혀 모르거나 알려 하지도 않고, 알면서 비틀어버린 거짓과 가짜가 진실과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지성주의와 정치권과 미디어에 의해 과대 대표된 ‘20대의 공정 담론’ 속에서 반가움을 넘어 공정에 관해 우리의 좁아진 시야를 넓어지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