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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04.23-24-1

- 서명: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 편/저자: 마리아 투마킨

- 발행처: 을유문화사()

서평
 자명하지 않은 타인(의 고통)과 연루된다는 것
서평자
 하인혜,인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발행사항
 683 ( 2024-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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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2. 과거를 망각하는 자들은 그것을 되풀이하는 형에 처해진다
3. 역사는 반복된다
4. 내게 일곱 살이 되기 전의 아이를 데려다 달라, 그러면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떤 여자가 될지 알려 주겠다
5.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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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에 관한 사실들은 대개 타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중 대부분은 애초에 타인들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무시하면 타인들은 곧 상징의 집합체로 변해 버린다. …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의 어떤 점이 우리와 다른지 알아차리는 것이며, 또한 그 다른 점을 굳이 비틀어 숭고함에 가까운 무언가로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 212쪽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은 마리아 투마킨의 네 번째 단독 저서로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2021년에는 영국에서 출간된 덕에 좀 더 너른 영어권 독자층에 알려졌다. 이후 2023년 한국에서 번역되었다. 말하자면 이 책이 영어권 국가에서 출간되어 한국 독자에게 닿기까지 5년이 걸린 셈이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어떤 지형도가 이 책의 번역서를 필요하게 만들었을까? 자신을 유대계-우크라이나계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로 정체화하는 투마킨의 비정형성을 띤 일인칭 서술의 현재적 의의를 살피기 위해서는 먼저 책의 원제인 『Axiomatic』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명한 진실’ 혹은 ‘참으로 여겨지는 진술’(axiom)의 형용사형(axiomatic)인 원제가 암시하듯, 본문의 목차는 일견 자명한 격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시간이 모든 상처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약속,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이미 상투어로 전락하여 힘을 잃은 구절들과 예수회의 식민주의적 오만이 묻어나는 교육 철학,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진술을 나란히 배치하여, 이 책의 집필 시점인 2010년대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안팎의 긴박한 사회적 문제를 담아 추적하는 개별 글들의 제목으로 활용한다. 동시에 이 격언들이 공통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결성(과 단절)을 암시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러한 수사적 전략에는 몇 가지 의도가 담겨있으리라. 먼저, 이 책에서 투마킨이 다루고 있는 사안들—십 대의 자살,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약물) 중독과 자살, 유소년기나 청소년기에 가해지는 성적 학대, 노숙인과 중독, 여성 노숙인이나 성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죽음, 이들을 둘러싼 사회 시스템의 부재나 실패, 강제 이주나 경제적·정치적 이민으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의 대물림 등—은 그 인과관계나 선후의 경계가 명징한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묘하게 교차하고 서로를 강화하고 있음을 이 제목들은 역설한다. 예를 들어, 학교 차원에서 실행하는 선제적 자살 예방 교육과 사후적 애도는 속절없이 실패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중독에는 몇 세기에 걸친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배제의 역사가 녹아있다. 누군가의 중독 문제 뒤에는 공공의료 시스템이 방치한 여성의 몸이 놓여있다. 초국가적 폭력이 추동한 강제 이주와 폭력, 죽음의 트라우마 사슬은 이후 세대를 구속하기도 한다. 문화역사가인 저자가 이 책에서 거둔 성취로는 우선 저자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연구해 온 학자의 역량과 고유한 인장이 느껴지는 문체를 결합하여 방대한 시간적, 공간적 스케일을 아우르며 추상적 고통과 구체적 몸의 통증을 일별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둘째, 투마킨은 정책이나 시스템, 개인적/집단적 선의가 실패한 균열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 삶의 복잡성과 미묘하고도 섬세한 함의를 길어 올린다. 이는 시적이고 윤리적이다. 르포의 취재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르포가 전제하는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 안에 자신의 관찰 대상을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기승전결의 서사가 포섭하는 데 실패한 자리에 머무른다. 예를 들어, <역사는 반복된다> 장에서 투마킨은 멜버른에 기반한 공익변호사 밴더의 일과에 동행하며 약물중독의 현실을 세밀화에 가깝게 그려낸다. 사법 제도 안에서 자신이 변호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밴더의 노력은 거의 언제나 실패하고, 이들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의 외로운 죽음의 자리를 애도하는 것도 밴더(와 같은 사람들)의 몫이다. 투마킨은 타인의 고통에 연루된다는 것은 지저분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절대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밴더의 삶을 통해 역설한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사회적 연대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는 자리를 자주 지나쳤다. 연대란 단어가 품은 혼종성이나 느슨한 결속력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동시에 연대가 성공보다는 실패의 자리에 더 가깝고, 실패하기에 더 자주 요청되고 지리멸렬할 수 있음을 목격했다. 어떤 애도의 자리는 십 년이 지나도 이어진다. 실패의 자리에 자주 선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투마킨의 프리즘적 접근법과 특유의 문체에서 드러나듯, 다종다기한 실패와 고통, 처참한 죽음의 자리는 도리어 왜 우리가 이에 대해 새롭게 말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지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