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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국문초록 16
제1장 머리말 18
제2장 돌하르방과 제주의 석상 21
제1절 돌하르방 유형과 연구현황 22
1. 명칭유래 22
2. 제작현황 28
3. 연구현황 38
제2절 제주의 석상(石像) 41
1. 복신미륵(福神彌勒) 41
2. 동자석(童子石)과 문인석 45
3. 신앙석상 50
제3장 돌하르방 연원 및 제작시기 55
제1절 지역별 형태 55
1. 제주읍성 60
2. 정의현성 65
3. 대정현성 68
제2절 돌하르방의 연원 70
1. 문화인류학적 관점 71
2. 민속학적 관점 76
3. 미술사적 관점 81
제3절 제작시기 고찰 85
1. 문헌분석 -『탐라기년』과『탐라기략』 85
2. 기능분석 - 구휼(救恤)과 방역(防疫) 89
제4장 돌하르방의 조형분석 96
제1절 돌하르방 조형기법 96
1. 몸·얼굴 비례 96
2. 몸·얼굴 형태 특징 103
제2절 돌장승과의 형태 비교 145
1. 돌장승의 비례와 형태 145
2. 돌하르방과 닮은 점 및 다른 점 169
3. 돌하르방의 조형특성 174
제5장 맺음말 177
참고문헌 180
Abstract 196
(도1) 삼성혈 입구 동쪽의 돌하르방, 1950년대 22
(도2) 제주시 방선문의 영주목사 김몽규 마애명, 1754년, 탁본, 제주동양문화연구소 소장(왼쪽),... 24
(도3) 『탐라순력도』한라장촉(漢擎壯囑)과 건포배은(巾浦拜恩), 1702년 28
(도4) 제주읍성 동문 밖 돌하르방, 1914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왼쪽), 제주읍성 동문 밖 돌하... 30
(도5) 일제시대... 32
(도6) 일제시대... 32
(도7) 제주시 동문로 옛 삼천서당(명승호텔) 앞의 돌하르방,... 33
(도8) 일제시대 남문지 지적도, 1940년(왼쪽). 남문의 정원루,... 33
(도9) 관덕정, 1902년,『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왼쪽 위). 해방직후의 관덕정 돌하르방,... 34
(도10) 산지천 북수구문, 1920년 전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 35
(도11) 『탐라순력도』정의강사(旌義講射), 1702년, 제주시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왼쪽),... 36
(도12) 『탐라순력도』대정양로(大靜養老), 1702년, 제주시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왼쪽),... 38
(도13) 동자복 복신미륵, 높이 286cm, 만수사터(왼쪽),... 42
(도14) 동자복(왼쪽)과 서자복(오른쪽)의 좌측면 귀 형태 43
(도15) 동자복과 서자복의 뒷면 의습선 44
(도16) 동자복과 서자복의 얼굴표현 형태 44
(도17) 왼쪽부터 서귀포시 소재(1668년), 표선면 소재(1774년), 안덕면 소재(1860년) 동자석과... 45
(도18) 댕기머리 동자석, 1754년 46
(도19) 문인석, 1854년 48
(도20) 김만일 무덤의 좌·우측 문인석, 1632년, 의귀리 헌마공신 김만일 묘역 50
(도21) 제주시 회천동 석상 5기, 높이 65㎝ 내외, 제주시 유형문화유산 제3호 52
(도22) 경천암과 복제 조천석,... 53
(도23) 3읍성 돌하르방 주변의 암석 재질 58
(도24) 『탐라순력도』제주조점(왼쪽), 대정조점(가운데), 별방시사(오른쪽), 1702년 61
(도25) 관덕정 앞 북쪽... 62
(도26) 관덕정 후원 남쪽... 62
(도27) 관덕정 후원 북쪽... 62
(도28) 삼성혈 건시문 앞 동쪽... 62
(도29) 삼성혈 건시문 앞 서쪽... 63
(도30) 제주대박물관 앞 남쪽... 63
(도31) 삼성혈 입구 서쪽... 63
(도32) 민속자연사박물관 입구 서쪽... 63
(도33) 제주목관아 내 남쪽... 64
(도34) 제주돌문화공원 내... 64
(도35) 제주 KBS 현관 동쪽... 64
(도36) 정의현 동문 북좌... 65
(도37) 정의현 동문 남우... 65
(도38) 정의현 동문 남좌... 65
(도39) 정의현 서문 북우... 65
(도40) 정의현 서문 남우... 66
(도41) 정의현 서문 남좌... 66
(도42) 정의현 남문 동우... 66
(도43) 정의현 남문 서좌... 66
(도44) 대정현 보성-신평간 도로변... 67
(도45) 대정현 보성리사무소입구 서쪽... 67
(도46) 대정현 서문옹성 내... 67
(도47) 대정현 보성초교입구 북쪽... 67
(도48) 대정현 보성초교입구 남쪽... 68
(도49) 대정현 보성초교운동장 입구... 68
(도50) 대정현 동문 밖 서쪽... 68
(도51) 대정현 동문옹성 내... 68
(도52) 인도네시아 발리 베사키 사원의 석상, 높이 20~70㎝, 김병모 촬영(왼쪽·가운데)... 72
(도53) 동몽골 다리강가 지역의 훈촐로들. 허르긴헌디의 석상, 장장식 촬영(왼쪽).... 75
(도54) 부안 동문안 당산 하원당장군 77
(도55) 나주 불회사 주장군 77
(도56) 남원 실상사 옹호금사축귀대장군 77
(도57) 남원 서천리 당산 방어대장군 77
(도58) 여수 연등동 벅수 남정중 77
(도59) 여수 연등동 벅수 화정려(1788) 77
(도60) 순장 충신리 돌장승 77
(도61) 순창 남계리 돌장승 77
(도62) 통영 문화동 벅수(1906) 77
(도63) 경남 창원... 79
(도64) 초가집 정낭, 재암민속마을(한림공원) 80
(도65) 여수석인, 유형문화재 제33호 제33호 82
(도66) 강진 병영성 홍교 벅수(왼쪽), 1976년, 김두하 촬영,『벅수와 장승』 도판. 칼라판 홍교... 83
(도67) 동자복), 1914년, 일본인 도리이 엽서(왼쪽)... 84
(도68) 김석익,『탐라기년』, 1918년 86
(도69) 『연주현씨세보』, 2000년, 현덕문의 가계도 87
(도70) 석상제작도구들, 서귀포시 안덕면 104
(도71) 관덕정 앞 남쪽 (제2-1호) 106
(도72) 제주대박물관 앞 북쪽 (제2-13호) 108
(도73) 삼성혈 입구 동쪽 (제2-7호) 110
(도74) 자연사박물관 입구 동쪽 (제2-3호) 112
(도75) 제주목관아 내 북쪽 (제2-19호) 114
(도76) 제주대정문 앞 동쪽 (제2-11호) 116
(도77) 제주대정문 앞 서쪽 (제2-12호) 118
(도78) 제주시청 현관 동쪽 (제2-15호) 120
(도79) 제주시청 현관 서쪽 (제2-16호) 122
(도80) 제주KBS 현관 서쪽 (제2-18호) 124
(도81)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서쪽 (미지정) 126
(도82)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동쪽 (미지정) 128
(도83) 정의현성 동문 북우 - 오른쪽 밖 (제2-22호) 130
(도84) 정의현성 서문 북좌 - 왼쪽 밖 (제2-27호) 132
(도85) 정의현성 남문 동좌 - 오른쪽 안 (제2-31호) 134
(도86) 정의현성 남문 서우 - 왼쪽 안 (제2-32호) 136
(도87) 대정현성 리사무소 입구 동쪽 (제2-35호) 138
(도88) 대정현성 남문지 동쪽 (제2-41호) 140
(도89) 대정현성 남문지 서쪽 (제2-42호) 142
(도90) 대정현성 동문 밖 동쪽 (제2-43호) 144
(도91) 부안 서문안 당산 상원주장군(1689) 152
(도92) 부안 서문안 당산 하원당장군(1689) 154
(도93) 부안 동문안 당산 상원주장군 156
(도94) 나주 운홍사 상원주장군(1719) 158
(도95) 나주 운홍사 하원당장군(1719) 160
(도96) 나주 불회사 하원당장군 162
(도97) 남원 실상사 대장군(1725) 164
(도98) 남원 실상사 상원주장군(1731) 166
(도99) 남원 서천리 당산 진서대장군 168
(도100) 제주대정문 서쪽 돌하르방(왼쪽) 및 전북 남원... 169
(도101)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서쪽 돌하르방(왼쪽) 및... 170
(도102) 나주 운홍사 상원주장군(왼쪽) 및 남원 실상사... 170
(도103) 삼성혈 입구 동쪽(왼쪽) 및 관덕정 앞 남쪽... 171
(도104)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돌하르방의 기단 홈 형태 172
(도105) 나주 운홍사 상원주장군과 소원 비는 아낙네,『문화재대관』... 172
(도106) 석굴암 금강역사 174
(도107) 삼성혈 입구(왼쪽)... 174
(도108) 경주 괘릉의 동·서 무인석,... 174
(도109) 제주시청 현관 서쪽... 175
(도110) 정의현 남문 서우... 175
(도111) 대정현 동문 밖 동쪽... 175
(참고도1) 제주성내 식수지역도, 1932년, 마쓰다 이지치 제작 189
(참고도2) 「삼성사 연혁」, 삼성사재단의 돌하르방 이수 기록 189
(참고도3) 산지천 원교, 1910년경 189
(참고도4) 북수구... 189
(참고도5) 남수각 홍예교 위 사람들,... 190
(참고도6) 남수구 홍문(홍예교), 1920년대 초 190
(참고도7) 북수구 홍문, 1920년대 초 190
(참고도8) 북수구 홍예교, 1920년대 초 190
(참고도9) 북수구 홍예교, 1920년 이전,... 190
(참고도10) 북수구 홍예교의 의보주, 1925년 190
(참고도11) 북수구 홍예교, 1925년 191
(참고도12) 1927년도... 191
(참고도13) 남문의 정원루, 1918년... 191
(참고도14) 관덕정의 이승만대통령 환영식, 1957년,... 191
(참고도15) 관덕정, 1890년대 191
(참고도16) 1930년대 돌하르방 191
(참고도17) 1930년대 돌하르방, 산지천... 192
(참고도18) 1930년대 돌하르방, 현... 192
(참고도19) 삼성혈 앞 돌하르방, 1930년대 192
(참고도20) 1941년의... 192
(참고도21) 1950년대 동문 밖 돌하르방 192
(참고도22) 제주대입구 돌하르방, 1970년 192
(참고도23) 관덕정 돌하르방,... 193
(참고도24) 관덕정 앞 돌하르방,... 193
(참고도25) 관덕정 앞 돌하르방,... 193
(참고도26) 원시적 조각 돌하르방, 1925년, 후지시마 삽화,... 193
(참고도27) 정의현 돌하르방,... 193
(참고도28) 정의현성 남문 밖 돌하르방,... 193
(참고도29) 정의현성 남문 밖 돌하르방, 1970년대 193
(참고도30) 대정현 돌하르방, 1950년대 194
(참고도31) 대정현성 돌하르방, 1970년대 194
(참고도32) 대정현성 충혼탑 앞 돌하르방,... 194
(참고도33) 나뒹구는 대정현성 돌하르방,... 194
(참고도34) 동복신미륵 현장조사,... 195
(참고도35) 동복신미록, 1930년대,... 195
(참고도36) 서복신미륵 제례의식, 1930년대,... 195
(참고도37) 서복신미륵, 1930년대,... 195
제주도의 상징물인 돌하르방은 문헌기록상 1754년(영조 30) 김몽규(金夢규) 목사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며, 조선시대 제주 3읍성에 48기가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제주읍성(濟州邑城)의 24기 가운데 23기(1기 분실), 정의현성(旌義縣城) 12기, 대정현성(大靜縣城) 12기를 합하여 모두 47기가 전해지고 있다. 1971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45기를 지정하였으며, 1960년대 중반에 서울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 입구로 옮겨진 2기는 제외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제주 고유의 돌조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돌하르방에 대하여 지역별 형태, 미술사적 연원과 제작시기, 조형특성을 문헌 자료조사 및 형태비교분석 등의 연구방법으로 좀더 면밀하게 고찰해볼 것이다. 돌하르방의 재질은 다공질 현무암(玄武岩)이지만, 지역에 따라 흰 사장석(斜長石), 검은 휘석(輝石), 노란 감람석(橄欖石) 반정(斑晶)광물을 함유하거나, 비현정질(非顯晶質) 또는 유상엽리(流狀葉理) 구조 등으로 다양하다. 돌하르방의 연원은 기존의 문화인류학적 관점인 남방기원설·북방기원설, 민속학적 관점인 육지전래설·제주자생설 이외에, 새롭게 미술사적 관점에서 보면 육지전래설의 돌장승 형태와 제주 복신미륵의 영향이 서로 융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제작시기와 관련해서는 돌하르방이 만들어진 때보다 160여년 지난 1918년에 와서야 문헌기록이 처음 등장함으로써, 많은 연구자들이 제작시기에 대해 깊이 신뢰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2가지 분석방법으로 살펴보겠다.
첫째는 문헌분석으로서, 1918년 김석익(1885~1956)이 쓴 『탐라기년(耽羅紀年)』에 많은 영향을 준 현덕문(1817~1876)의『탐라기략(耽羅記略)』고찰이다. 그렇지만 책이 현존하지 않아 대신에 현덕문의 저서에서 돌하르방 즉 옹중석(翁仲石) 기록이 나올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였다. 연주 현씨 족보에서 그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10세까지 함께 지낸 증조부인 유학자 현광보(1739~1826)가 15세 때 돌하르방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실제적 경험을 근거로 현덕문의 저서에서 충분히 다룰 개연성이 높으며, 이를 탐독한 김석익 또한 『탐라기년』을 저술하면서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둘째는 기능을 고찰하는 방법으로서, 돌하르방이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세워졌을까 하는 점이다. 제주읍성에는 3성문마다 8기씩 24기, 정의현성과 대정현성은 3성문마다 4기씩 12기를 각각 세웠다. 이는 육지 돌장승처럼 읍성을 보호하는 수문장 역할은 물론, 주민 안녕(安寧)을 위한 방역(防疫)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돌하르방의 조형특성에 있어서는 많은 영향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육지 돌장승과 구체적인 형태비교분석을 함으로써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돌하르방과 돌장승의 닮은 점으로는 ① 벙거지 형태의 모자 ② 커다란 퉁방울눈 ③ 큼지막한 주먹코와 콧구멍 ④ 대부분의 일자형 귀 ⑤ 일자형 입과 툭 튀어나온 볼 ⑥ 몸·얼굴 비례 모두 짧은 3~4등신 ⑦ 기능면에서 읍성과 사찰보호·산천비보(裨補)·방역(防疫)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돌하르방 경우에는 읍성보호와 함께 전염병을 막기 위한 방역의 임무를 함께 띠고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돌하르방과 돌장승의 다른 점으로는 돌하르방에만 ① 팔과 손 표현 ② 기단석과 함께 정낭 홈이 일부에 새겨져 있으며, 반면 돌장승에는 ③ 이마의 백호(白毫) 표현 ④ 치아 또는 큰 뻐드렁니 ⑤ 콧수염과 길쭉한 채수염 ⑥ 명칭을 앞면에 크게 음각 ⑦ 당산제나 장승제 형식의 제의(祭儀) 등이 있지만 돌하르방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에 근거한 돌하르방의 대표적 조형특성으로는 2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형태적인 역동감(逆動感)이다. 돌하르방이 돌장승과 형태적으로 확연하게 구별되는 조형적인 특징은 바로 팔과 손동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주읍성 돌하르방 경우에는 얼굴의 시선방향에 맞춰 목의 각도가 달라지고, 설치 위치나 손의 움직임에 따라 어깨 틀기와 양팔 기울기를 대칭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둘째는 정제된 해학미(諧謔美)이다. 돌하르방은 크기가 다르고 얼굴이나 몸 형태 또한 조금씩 변화 있게 만들어졌지만, 현존하는 47기의 돌하르방 모두 벙거지를 쓰고 얼굴과 손동작을 강조해서 표현하는 데 오차(誤差)가 없는 것은 동일한 기능과 형태가 부여된 조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게다가 민간인(民間人)을 주축으로 세워진 육지 돌장승과는 달리, 돌하르방은 관(官)이 주도해 제작된 관계로 말미암아 괴기스러운 표정이 많이 절제되었으며, 제례 의식 또한 거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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