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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리비>의 발견 이후 지증왕의 집권과정에 대한 수많은 검토가 있었다. 그 결

과 500년 11월에 지도로가 자신이 즉위할 목적으로 정변 등의 수단을 동원하여 소지왕을 몰아내고 집권하였으나, 비상적인 집권이라는 한계 때문에 눌지왕계 등의 저지를 받아 정식으로 즉위하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견해가 많은 동의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료상 눌지왕계로 지칭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고, 지도로가 당시 64세라는 점은 이 집권이 당초 즉위를 예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도로의 조부는 눌지왕의 아우인 복호, 즉 파호갈문왕으로 비정할 수 있으며, 더불어 ‘사탁부 갈문왕’은 복호가 눌지왕으로부터 사탁부를 사여받고 갈문왕으로 책봉된 것에서 비롯되어 습보를 거쳐 지도로에게 세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냉수리비>의 발견 이후 갈문왕에게 왕위계승권이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그

러나 여타의 왕들과는 달리 지도로는 집권 후 3년 뒤에야 즉위했다는 점에서 ‘사탁

부 갈문왕’은 원칙상 ‘탁부 마립간’이 될 자격이 없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503년 10월 지도로의 집권은 국왕의 유고로 인해 마땅한 왕위계승

자를 정하기 어려운 비상상황에서 국정을 대행할 이로 추대되어 집권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소지왕은 제3자에 의해 갑작스럽게 돌아갔거나, 실정으로 인하여 폐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도로가 3년 동안 갈문왕으로서 국정운영을 주도한 것에 대해 종래 ‘공위시대’,

‘대행체제’ 등의 표현이 있었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당시에 쓰던 용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진덕왕이 돌아간 후 시도되었다가 좌절된 ‘상대등 중심의 攝政’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정치운영방식은 소지왕이 돌아간 후 갈문왕인 지도로가 국정운영을 주도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바, 글쓴이는 <냉수리비>에 나타난 갈문왕 중심의 정치운영 및 지도로갈문왕의 지위를 ‘섭정’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Since the discovery of

Monument)>, there had been numerous examinations about the process of coming into power in King Jijeung. As a result, with the aim that Jidoro himself ascends the throne in November of the year in 500, he mobilized a means such as a politicalchange, and grasped political power by expelling King Soji. However, The opinion came to be much agreed, about which 3 years were taken up to formally ascending the throne through being supported by King Nulji due to limitation called the emergent coming into power. However, in light of historical records, a point that there is not seen a figure enough to be designated as King Nulji's camp and that Jidoro is 64 years old at that time implies that this coming into power didn't aim to ascend the throne in the beginning. Jidoro’s grandfather is deduced as King Nulji’s brother Bokho who later became Paho Galmunwang. It is presumable that 'Satakbu Galmunwang(沙喙部葛文王)' originated from when King Nulji personally gave Satakbu to Bokho and proclaimed him as Galmunwang. It had later been transmitted from Seupbo Galmunwang to Jidoro. Since the discovery of , the opinion had been raised about which there is the right to the throne in Galmunwang. However, unlike other kings, in a point itself that 3 years had been taken until Jidoro ascended the throne since grasping political power, the inference is available that 'Satakbu Galmunwang' had no qualification in principle of being likely to become 'Takbu Maripgan(喙部麻立干).'

Jidoro’s ascension which occurred in October of the year of 503 was eveloped

under a state of national emergency. King Soji was likely to be suddenly killed by a third party or dethroned due to maladministration cases.Because of the King’s sudden death, it was difficult to choose a proper successor to the throne. Jidoro was selected as an acting king under the circumstances.

Regarding that Jidoro had operated the national administration as Galmunwang

for 3 years, there had been conventional expressions such as ‘Interregnum(空位時代)’ and ‘acting system.’However, in a sense that these expressions are not terminology, which had been used at that time, there is necessity of being discussed about what this will be called. In terms of this, the writer paid attention to Seopjeong(攝政-regent) centering on Sangdaedeung(上大等),' which was attempted and then frustrated after King Jindeok passed away. This politically-operating form can be seen to be the same as what Jidoro, who is Galmunwang, took the initiative of executing the national dministration, after King Soji were dead. Accordingly, the writer suggests that it is called Seopjeong(攝政-regent) as the political operation centering on Galmunwang and the position of Jidoro Galmunwang, which wereshown in .

권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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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李丙燾의 韓國古代史硏究 :漢四郡·三韓의 歷史地理 硏究를 중심으로 趙仁成 pp.5-38

謝承『後漢書』東夷列傳에 대한 예비적 고찰 박대재 pp.39-70

신라 至都盧葛文王의 '攝政' 윤진석 pp.71-107

6세기 신라 지방지배 방식의 변화와 '村' 홍기승 pp.109-154

신라 尙·良·康州 郡縣城의 양상과 형성 과정 박성현 pp.155-211

新羅의 東宮制度 이승현 pp.213-251

신라왕실과 고려왕실의 칭호 김창현 pp.253-307

고대 일본에 전파된 백제 도교 張寅成 pp.309-339

752년 金泰廉의 對日交易과「買新羅物解」의 香藥 박남수 pp.341-391

膠東半島 高麗戍 위치고증과 설치배경 朴現圭 pp.393-417

신라 통치의 흐름을 꿰뚫은 신앙적 정치체계 : 채미하, 2008『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혜안 <서평> 김정숙 pp.419-433

참고문헌 (38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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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1 강종훈, 2000 신라상고사연구 , 서울대학교 출판부. 미소장
2 강종훈, 2004 「신라왕족의 로맨스, 그 현장을 찾아서」 고대로부터의 통신 , 푸른역사. 미소장
3 신라 中古·中代期 상대등과 왕위계승 소장
4 新羅 中古期의 政治過程試論 네이버 미소장
5 迎日 冷水碑와 新羅의 官等制 소장
6 新羅 智證·法興王代의 政治改革과 그 性格 소장
7 盧重國, 1992 「迎日 冷水里碑」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Ⅱ,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미소장
8 울주 신라 서석명기의 신검토 소장
9 迎日冷水里新羅碑에 보이는 部의 性格과 政治運營問題 소장
10 文暻鉉, 1992 「居伐牟羅 男彌只碑의 새 檢討」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1. 미소장
11 朴南守, 1992 「신라 화백회의의 기능과 성격」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1. 미소장
12 新羅 和白會議에 관한 再檢討 소장
13 新羅 智證王의 卽位過程에 대한 硏究 소장
14 朴淳敎, 1999 金春秋의 執權過程 硏究 ,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미소장
15 新羅 上代의 王位繼承과 聖骨 네이버 미소장
16 신라 금석문을 통해 본 葛文王 소장
17 麻立干時期의 王權과 葛文王 소장
18 송은정, 1996 「新羅 上代 葛文王의 성격과 변화」 淑明韓國史論 2. 미소장
19 李基東, 1984 新羅 骨品制社會와 花郞徒 , 일조각. 미소장
20 李基白, 1974 新羅政治社會史硏究 , 일조각. 미소장
21 李基白·李基東, 1982 韓國史 講座; 古代篇 , 일조각. 미소장
22 新羅 中古時代의 聖骨 네이버 미소장
23 李鍾旭, 1980 新羅 上代 王位繼承 硏究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미소장
24 李鍾旭, 1982 新羅國家形成史硏究 , 일조각. 미소장
25 李鍾旭, 1994 「迎日冷水里碑를 통하여 본 新羅의 統治體制」 李基白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上) , 일조각. 미소장
26 新羅上代 智證王系의 王位繼承과 朴氏王妃族 소장
27 신라 중고기 갈문왕과 상대등의 지위계승 소장
28 The Perfection of the Defense System to Goguryeo and Coming into Power of King Jijeung(500~514) in Silla Dynasty 소장
29 全德在, 1996 新羅六部體制硏究 , 일조각. 미소장
30 新羅 6部體制의 變動過程 硏究 네이버 미소장
31 迎日冷水里新羅碑의 金石學的 考察 소장
32 迎日冷水里新羅碑에 대한 基礎的 檢討 소장
33 6세기초 新羅王權의 位相과 官等制의 成立 소장
34 朱甫暾, 1992 「三國時代의 貴族과 身分制-新羅를 中心으로」 韓國社會發展史論 , 소화. 미소장
35 河日植, 1998 「新羅 官等制의 起源과 性格」,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미소장
36 武田幸男, 1990 「新羅六部와 그 展開」 碧史李佑成敎授停年退職紀念論叢 . 미소장
37 今西龍, 1922 「新羅葛文王考」 新羅史硏究 . 미소장
38 末松保和, 1954 「新羅中古王代考」 新羅史の諸問題 . 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