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얼굴 없는 사람들63 백련사 동백숲64 콘택트렌즈가 눈 안에서65 문득, 눈물겨운 날66 선암사에서67 목포 갓바위 출렁다리68 누비이불 바다69 교회에 가지 않았다70 트라이앵글71 만연사 배롱나무 연등꽃72 사랑, 당신74 무위사無爲寺75 군산동 단풍나무 숲에서 76 만선77 움직이는 집78 시 써라80
제4부 법주사 종소리가 들리는 저녁83 괴물들은 쉽게85 기다리는 시간이 멀다 87 고양이 눈 같은 CCTV89 시가 뭔데?91 순천만 92 동문서답93 그 사내94 수굿한, 수국꽃95 어머니 눈물 같은96 달팽이97 스님과 목사님 98 귀빠진 날99 에코의 서재101 녹산등대 가는 길103
시작시인선 194권. 2011년 『문학의식』으로 등단한 김경애 시인의 첫 시집이다. 김경애의 시는 사람살이의 온갖 억압과 상처,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이 심미적 언어로 진술되어 있다. 주로 가족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언니와의 관계는 물론 사촌 오빠와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몇 번이나 짐 싸 들고 집을 떠”(「부재不在」)나더니 끝내 바다 속에 몸을 던진 것이 언니이고, “변변찮은 땅문서 들고 서울로 가버린”(「걱정의 뱀」) 것이 사촌 오빠이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것은 아버지이다. 〈시인의 말〉에 의하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없다./ 우리 집은 평화다.”라고 “술에 취해” 말하는 아버지한테 한때는 “악을 쓰며” 덤볐던 것이 그이다. “술 마시고 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릴 것이 두려워 아버지가 젊을 때는 “장독대 틈에 칼을 숨”(「칼」)기기도 했던 것이 그와 어머니이다. 그의 시는 자신이 껴안고 있는 각종 트라우마의 심미적 진술이며 지속적인 시 쓰기를 통해 저 자신의 트라우마를 적절하게 극복해나가고 있다.
책속에서
가족사진
애리 언니는 아버지에게 항상 아린 무늬였다.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에 칼금이 나는 듯 아리다고 했다. 애리 언니는 자주 집을 나갔다.
애리 언니가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의 등골 빼먹으며 대학 다니던 여동생도 상근예비역으로 출퇴근하던 남동생도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도 그날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엄마는 배경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이천에서 직장 다니던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날 오후, 다짜고짜 아버지는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구멍가게를 겸하던 집, 사진관 경계선의 벽은 꽃무늬였다.
입술을 빨갛게 칠한 엄마, 그 옆에는 아버지 아버지 옆에는 콧날이 오뚝한 애리 언니 엄마 옆에는 키가 작은 여동생과 군복을 입은 남동생 애리 언니 옆에는 사각턱을 감추고 싶었던 단발머리의 내가 한꺼번에 모여 쫓기듯 가족사진을 찍었다.
오월의 복사꽃 같았던 애리 언니 내게는 티눈 같던 애리 언니
다음 해 아버지 첫사랑과 이름이 같다던 애리 언니는 가족사진 속에서 잘못 떨어진 물방울처럼 얼룩이 되었다. 아버지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 검은 가시가 되었다. 아버지의 눈 속으로 들어가 꽃무늬 치마 되어 나풀거렸다.
고모를 알은척 안 했다
간판도 없는 서산동 할매집, 미자 언니는 비밀 이야기를 풀어놓듯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하며 나를 그곳에 데려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보리마당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옹색한 지붕이 파란 집. 비탈진 텃밭에는 봄동이 꽃을 피웠고 빨랫줄에 걸린 서대 몇 마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기별 없이 찾아간 고향집 풍경처럼 동네 사람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 작은방에서 서대찜을 기다리는 동안 압력밥솥이 요란스럽게 칙칙거렸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보해소주, 크라운맥주, OB맥주……. 때 묻은 작은 진열장에는 한라산, 88디럭스, 라일락, 엑스포, 시나브로……. 창고 같은 방안은 보물들이 꽉 찬 흑백필름 같았다. 막걸리 몇 잔 들어가니 목포 앞바다가 출렁거렸다. 옆방에서 갑자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돌아다보니 얼핏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20여 년 전, 타향에서 적금 들어 엄마에게 맡긴 내 돈, 오백만 원 떼어먹고 소식 없던 아직도 춤추러 다닌다는 고모였다. 끝내 고모를 알은척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