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 012 봄에 기대어 015 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 019 해후 023 까마중 030 피아노 033 떡 한입 038 내 가슴에 옹이가 되어 041 기념일 045 거짓말 049 행복한 사람 051 장마 056 궁리 060 3급 건망증 063 황토방 067 그해 가을 071 빗소리
2. 덧없음에 대하여 078 촛대 꽃 내 친구 081 낚시와 떡밥 085 C레이션 088 지키고 싶은 것 092 못 말리는 여자 095 덧없음에 대하여 099 아름다운 킬러 103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106 개미 110 물밥 114 무말랭이 118 돌아가 그 세월 속에 다시 선다면 123 배꽃 향기
3. 잊는 연습 128 못난 손 131 사랑에 대하여 135 블랙아웃(black out) 139 내 사랑 142 어머니 145 명경대 149 고개를 낮추니 153 흑장미 사연 157 잉꼬 새 짝을 만나다 161 바이오 팬티 164 산다는 건 168 잊는 연습 171 중용(中庸) 175 후회하지 않으려 179 마지막 사랑 185 살어리랏다
4.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192 약속 194 어머니의 ‘말이다’ 198 서약의 허와 실 201 아내가 쓰는 남편의 군 시절 이야기 206 우리 집 삼식님 211 내려갈 때 아름다운 사람 215 물지게 220 인형의 집 223 곳간 226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230 점 하나만 찍으면 233 비둘기 집 236 깡통치마저고리 239 눈물 단상 243 다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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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 : 김언홍 수필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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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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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에서 여성이 지닌 섬세한 서정과 어조가 해조(諧調)된, 너무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그의 작품을 대하면 독자들은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려야 할 것이다. 적당히 감추기보다 충분히 드러내면서 환기된 대상들, 특히 사랑하는 이들과의 별한(別恨)에서 그의 서정은 촛불처럼 흔들린다. 이러한 비감의 질감들은 거친 통성(痛聲)이 아니라 순화되고 고요한 아니마(anima)의 공명인 것이다. 심사한 사상과 휴머니즘의 고갈로 빚어진 정서의 갈증은 더울 때보다 추울 때 더 강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호된 시련적인 체험 안에서도 정의(情誼)를 잃지 않았던 끈의 정체성이 김언홍 수필가가 끄집어내고자 한 미학이다.
김언홍 수필가는 깊은 생각의 정서를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군잎이 꾸물대지 않도록 적절하게 욕심을 참는다. 은폐와 가식으로 은신하기보다는 제재를 충분히 드러내면서 감성을 통제함으로써 그 맛이 깔끔하며 생의 아픔을 위무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시공이 단출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량과 내용의 ‘절제 안의 절제’를 통해 어느 화려한 여행 못지않은 의미를 생산하고 있다.
삶의 높은 명상이 시현되는 듯한 수필들 이외에도, 구성에 있어서 절제미를 보이는 작품들도 이번 그의 작품집에서 여기저기 보인다. 출현되는 소재가 다양하면 체계적인 상관물의 흐름에서 오는 중층적인 미적 체험도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두 상관물만을 구조로 빚어진 수필들은 단아하면서도 적잖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상관물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끌어오는 그의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 되어 새롭게 찾아온다. 아픈 기억들이지만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된다. 지나온 삶의 쉼표를 찍듯 써내려간 수필들. 작은 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 한순간에 마음의 위안을 준다.
“때아닌 팔월에 영산홍이 꽃을 피웠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낙엽 들던 이파리가 어느새 제 빛깔로 돌아와 나를 반긴다. 손길이 닿지 않는 그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아이의 영혼인 양 문득 다가와 웃고 있다.”
저자만의 특별한 감성은 자연과 기민하게 소통하고 있다. 작은 관심이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저자의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들이다.
“함석지붕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골목길 한쪽 구멍가게엔 사과궤짝을 뜯어 만든 야트막한 나무상자에 열십자로 가운데 경계를 만들어 신문지를 깔고 비과며, 눈깔사탕이며, 캐러멜 따위를 종류별로 구별해 놓고 팔았다.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우리 남매의 주전부리는 늘 똑같았다. 누런 밀가루를 치대어 속에 팥앙금을 넣은 찐빵을 만들었는데, 엄마가 만든 찐빵은 가게에서 파는 것과 달리 식으면 곧 단단해져 맛이 덜했다.”
따스한 기분에 미소가 지어진다. 저자는 현재와 과거를 촘촘히 엮어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낸다. 살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눈물 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따뜻한 시선과 웃음으로 추억을 그려 내고 있다. 그것은 모든 추억이 즐거웠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저자의 여유로움 때문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저자의 이런 마음은 수필의 전반에서 드러난다.
“집착은 또 다른 집착으로 우릴 괴롭게 만든다.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릴 두고 떠날 겁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것들이 우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버려두고 가야 할 것이란 걸 나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고, 할머니가 되고…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마냥 시간이 지나간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우리는 늘 시간 속에서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저자의 시간 속에서, 시선 속에서 공감하면서 우리만의 특별한 추억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책속에서
우리 집 거실 창문을 열면 마주 바라보이는 드넓은 과수원에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과수원 자락은 온통 눈이 내려 쌓인 듯 하얀 꽃밭이다. 코끝에 날아와 앉는 배꽃 냄새에 어질어질 멀미가 난다. 내 어릴 적, 외할아버지댁 뒤뜰엔 커다란 배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배가 익어가는 가을이 오면 할아버지는 기다란 장대를 들고 나무 곁을 오락가락하였는데. 극성스런 까치 떼가 잘 익어 단내 나는 배만 찾아 부리로 구멍을 낸 뒤 쪼아 먹고는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단것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네 뒤뜰엔 커다란 단감나무도 몇 그루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유독 이 배나무를 아끼셨다. 1950년에 일어났던 동족 간의 전쟁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남긴 채 휴전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전쟁이 지나간 마을 여기저기엔 시체들이 뒹굴며 악취를 풍겼다. 외할아버지네 마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마을 이장의 주도하에 곳곳에 널려있는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외할아버지가 가족 대표로 그 일에 동원이 되었다.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를 적의 눈을 피해 위험이 덜한 야밤을 틈타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푸른 달빛이 실눈을 뜨고 내려다보는 창백한 밤에 시체를 치우는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부엉이조차 울지 않던 그 밤, 시체를 둘러멘 사람들의 저벅대는 발걸음 소리만 정적을 흔들 뿐이었다. 무섬증에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지만, 할아버지 또한 그 일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며 열심히 시체를 날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먼동이 트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할아버지가 메고 가던 가마니 안에서 느닷없이 ‘여보세요’ 하는 쉰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왔다. 시체가 말을 걸어오니 얼마나 놀랐을까. 할아버지는 그만 넋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할아버지가 들은 것은 환청이었을 것이라고. 그 길로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만 할아버지는 영영 일어나 보지도 못 하시고 세상을 뜨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뒤뜰의 배나무에 배가 열리지를 않았다. 가을이면 그리도 실하게 배가 열리던 나무였는데. 이태를 두고 배가 열리지를 않자 이웃의 한 노인이 삼베를 잘라 나무에 걸어봐 주라고 하였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외할머니가 삼베를 잘라 나무에 걸어주니 다음 해부터 배가 다시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무도 저를 아끼던 주인의 죽음을 슬퍼했던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한다면 나는 반박할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엔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 해 후 전란으로 망가진 집을 수리하면서 배나무도 결국 베어지고 그 자리엔 우물이 들어앉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떠나고 배나무도 베어지고, 세월은 모든 것을 쓸어안고 흘러갔지만, 코끝에 맴도는 배꽃 향기가 나로 하여금 오래도록 할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 ‘배꽃 향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