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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평등은 우리 모두를 존엄하게 한다
들어가며: 이 책에 대하여

1장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법
법과의 첫 만남
법과의 두 번째 만남, 그리고 변호에 대한 첫 배움
주임 사제가 항소하다
용감한 역사: 1950년대 대법원 판결
역사의 오점이 된 ‘로소우 대 삭스’ 판결
대법원이 주임 사제 사건을 판결하다
주임 사제 판결이 갖는 의의
불복종 운동과 젊은 변호사 만델라
남아프리카 역사에서 최대 법정 싸움: 반역죄 재판
무장투쟁과 <사보타주 법>: 리보니아 재판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법의 양면성
정의와 자유의 편에 섰던 이들을 기억하며
입헌주의로의 이행
회복 프로젝트로서의 법

2장 에이즈의 유행과 입헌주의로의 이행
질병과 수치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달한 에이즈
역사적인 날: 1990년 2월 2일 금요일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에이즈의 유행
배리 맥기어리 사건
언론의 힘을 실감하다
에이즈 정책 수립을 향한 노력
배리 맥기어리 사건의 상고심 판결

3장 사법 체계의 전환
깊어지는 고민
민주주의 시대 사법 체계의 변화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되다
에이즈 치료법의 등장과 공개 발표문
음베키 대통령이 에이즈 과학에 의문을 가지다
헌법재판소의 설립과 새로운 헌법의 탄생
보건 의료에 대한 기본권

4장 에이즈 치료를 둘러싼 논쟁
사건번호 2001/21182
아주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문제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나는 아기들
희망의 돌파구: 새로운 치료법의 등장
네비라핀 더하기 컴비비어: 내가 복용한 약제들
정부가 완강히 버티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보하라: 수브라머니 사건과 그루트붐 사건의 유산
스티브 반투 비코라는 공통의 기억
소송하기로 결정하다
각계각층 원고들의 진술서
정부의 답변
치료행동캠페인의 재답변
프리토리아 고등법원이 사건을 심리하다
프리토리아 고등법원의 놀라운 판결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항소하다
헌법재판소가 당면한 어려움
헌법의 최고 규범성, 법치주의, 권력분립
법치주의와 판사의 권한
웨스턴케이프 사건
헌법재판소가 네비라핀 사건을 판결하다
기념비적인 승리
도덕적·지적 권위의 원천으로서의 헌법재판소

5장 다양성과 입헌주의
게이라는 자각
다양성을 존중하고 기뻐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
헌법의 기본 규정: 시민권, 국기, 언어
‘성적 지향’이 헌법의 평등 조항에 포함되다
아픈 역사의 교훈
코걸이를 할 권리: 수날리 필라이 판결
다양성은 경청하는 것이다
입헌주의라는 도덕적 프로젝트

6장 빈곤, 사회정의와 헌법
뜻밖의 친절
과거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과제
헌법재판소의 첫 번째 차별 시정 조치 사건
‘일차적 권리’와 ‘사회경제적 권리’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에 포함된 사회경제적 권리
보건 의료에 대한 접근권과 수브라머니 판결
적절한 주거에 대한 접근권과 그루트붐 판결
그루트붐 사건에서 블루 문라이트 사건까지
사법부는 정부 정책에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는가
사법 과잉의 위험
사회경제적 권리의 의미
사회 보조금과 우리 모두의 존엄성

7장 결론: 입헌주의의 약속과 시험
입헌 민주주의 이후 20년
헌법에 대한 회의론, 그럼에도 내가 헌법을 옹호하는 이유
이야기를 맺으며

감사의 글
옮긴이 후기: 보이는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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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이 책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차별로 악명 높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보육원에 보내질 정도로 가난했고, 가난했지만 백인이었으므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며, 남아공의 민주화 과정에서 유능한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는 한편에, 자신이 게이임을 인정하고 HIV 감염인임을 공개할 용기를 얻어, 소수자를 위한 싸움에 기꺼이 나서는, 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 에드윈 캐머런의 이야기이다. 백인으로서 체제의 수혜자이자, 성 소수자와 HIV 감염인이라는 복합적 정체성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의 모습, 나아가 극적인 남아공의 민주화 과정에서 ‘법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을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특히, 저자의 표현처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법’의 외피를 쓰고 있었으므로, ‘법의 정의’를 통해 체제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남아공의 민주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시절 흑인의 이동을 금지했던 <통행법> 폐지 재판, 만델라의 변호사 자격 박탈을 둘러싼 재판, 반역죄를 묻는 재판에서의 법정 공방, HIV 감염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재판, 에이즈 치료제의 보급을 막았던 ‘민주 정부’와의 법정 투쟁 등의 이야기가 이 책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데 꽤 흥미롭게 읽힌다.
1994년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협에 의한 민주화’의 경로를 밟았던 남아공의 사례는 구세력과 공존하면서 민주주의를 민주화해야 하는 기나긴 과정에서 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지점들을 던진다.

1. 게이, HIV 감염인, 남아공 헌법재판소 재판관, 에드윈 캐머런
온 마음을 다해, 나는 동성애자이고 싶지 않았다. 낙인이 찍히고 고립되고 욕을 먹는, 성 정체성이 다른 부끄러운 소수자, 그 행동이 너무 경멸스럽고 죄 많고 부도덕해서 범죄로 간주되었던 그런 사람들의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맹세했다. 내가 정말 동성애자라면, 자살하리라. 이후 다행히도, 나는 신중하게 그 최종 결정을 미루곤 했다. …… 이후 15년 동안, 거의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의지의 마지막 한 가닥까지 사용해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이 자각과 싸우며 보냈다(269쪽).

긴 자각과의 싸움의 끝에서, 캐머런은 소수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고 법원인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으로서 10명의 동료 재판관들과 함께, 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 사회정의, 평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를 가졌다.
나는 두 명의 백인 재판관 중 하나로서, 절대다수가 흑인이며 수백 년 동안 제도화된 인종 지배와 식민 착취의 상흔을 가진 나라의 헌법재판소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게이, 즉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동성애자를 심각하게 억압하는 이 나라, 이 대륙, 이 세계에서 당당하게 살고 있다.
또한 HIV 감염인으로서 세상의 지독한 낙인과 배척 속에서 32년 가까이 살아왔다.
게이이면서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은 내가 인간을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양심적이면서도 유능한 판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12)

2. 남아공의 민주화와 성 소수자 : 평등은 우리 모두를 존엄하게 한다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이 ‘세계 최초’로 헌법에 명시된 나라는 어디일까? 놀랍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차별이 극심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남아공은 1994년 민주화를 이루면서 세계 최초로 게이와 레즈비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헌법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헌법 제9조 평등권 조항에는 17가지 조항, 즉 인종, 젠더, 성, 임신, 혼인 상태,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피부색, 성적 지향, 연령, 장애, 종교, 양심, 신념, 문화, 언어, 태생 등을 이유로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민주화 과정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동성애자들과 그들의 용기 덕분이다.

트세코 사이먼 은콜리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해 활동하던 용감하고 주장이 분명한 인물이었다. 사이먼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었다. 그는 타운십 출신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지도자였던 동시에, 공개적으로 당당히 커밍아웃한 게이이기도 했다. 성적 지향에 관해 투사와 같은 용기를 보였던 사이먼 덕분에 반아파르트헤이트 저항에 참여했던 국내 지도자들은 레즈비언과 게이의 평등에 대해 가졌던 거부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헌법의 평등 조항에 성적 지향이 포함된 것은 사이먼의 용기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결과였다. 성적 지향의 정치는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가외의 것이 아니었다. 존재의 중심이자, 정치적 헌신 전체의 중심이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인 애드윈 캐머런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책은 게이이자 HIV 감염인인 그가 경험한 남아공 민주화의 생생한 이야기이다.

3. 에이즈와의 싸움
“우리가 막 민주주의를 달성했을 때, 이 전염병이 온힘을 다해 우리를 덮치고 있었다.”
남아공의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에이즈였다. 민주주의와 에이즈라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함께 온 샘이었다. 이 에이즈와의 싸움이 이 책에서 꽤 흥미로운 부분인데, 엄청난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죽어 가는 사람들의 편에서 약값을 내리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하나라면, 만델라 대통령의 후임이었던, 그러니까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었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바이러스로 인해 전염된다는) 에이즈 과학에 의심을 품으면서 에이즈 치료를 통제했고, 그 결과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극, 그리고 에이즈 치료를 재개하도록 하기 위해 ‘민주 정부’와 법정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자신이 HIV 감염인이었던 캐머런은 이 싸움을 위해, 즉 에이즈 치료제의 엄청난 약값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부조리함을 고발하기 위해 공개석상에서 커밍아웃했다.

나의 존재를 통해, 에이즈를 둘러싼 아프리카의 엄청난 부정의를 드러낼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미화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대륙에서 나는 미화 4백 달러에 달하는 약값을 매달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의 빈곤, 그 한가운데에서 저는 당신들 앞에 서있습니다. 저는 건강과 체력을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 덕분에 현재 많은 HIV 감염인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4. 법의 정의에 대한 믿음
법이 없었다면 아파르트헤이트가 오랫동안 그렇게 효과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한 법이 없었다면, 분명 그 체제는 훨씬 가혹하고 악독하고 파괴적이며 비인간적이었을 것이다. 법률 활동을 통한 저항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집행 속도를 늦추고 부정의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길 거부했던 정직하고 원칙에 충실한 판사들, 그리고 변호사들의 활동이 있었기에 더 나은 법체계, 즉 법이 불의와 불평등이 아니라 정의와 평등을 수호하는 체계로 변화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8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여전히 빈곤과 범죄, 부패, 불평등과 싸우고 있지만, 그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치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같다.

“첫 20년 동안 달성한 성취로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우리의 치열한 헌신으로 이뤄 낸 결과이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온 마음을 다해, 나는 동성애자이고 싶지 않았다. 낙인이 찍히고 고립되고 욕을 먹는, 성 정체성이 다른 부끄러운 소수자, 그 행동이 너무 경멸스럽고 죄 많고 부도덕해서 범죄로 간주되었던 그런 사람들의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맹세했다. 내가 정말 동성애자라면, 자살하리라. 이후 다행히도, 나는 신중하게 그 최종 결정을 미루곤 했다. …… 이후 15년 동안, 거의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의지의 마지막 한 가닥까지 사용해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이 자각과 싸우며 보냈다.
트세코 사이먼 은콜리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해 활동하던 용감하고 주장이 분명한 인물이었다. 사이먼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었다. 그는 타운십 출신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지도자였던 동시에, 공개적으로 당당히 커밍아웃한 게이이기도 했다. 성적 지향에 관해 투사와 같은 용기를 보였던 사이먼 덕분에 반아파르트헤이트 저항에 참여했던 국내 지도자들은 레즈비언과 게이의 평등에 대해 가졌던 거부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헌법의 평등 조항에 성적 지향이 포함된 것은 사이먼의 용기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결과였다. 성적 지향의 정치는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가외의 것이 아니었다. 존재의 중심이자, 정치적 헌신 전체의 중심이었다.
나의 존재를 통해, 에이즈를 둘러싼 아프리카의 엄청난 부정의를 드러낼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미화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대륙에서 나는 미화 4백 달러에 달하는 약값을 매달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의 빈곤, 그 한가운데에서 저는 당신들 앞에 서있습니다. 저는 건강과 체력을 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