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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출간사

I. 백범일지 상권

인, 신 두 어린 아들에게

1. 나의 어린 시절
조상과 가문의 내력
난산 끝에 태어난 나
배움의 시작

2. 시련의 젊은 날
타락으로 얼룩진 과거
신비한 동학의 세계로
팔봉접주 김창수
청계동의 안 진사

3. 질풍노도의 시절
청나라를 향하여
김이언의 의병
스승의 손자사위가 된 나
길고도 험한 방랑 길

4. 첫 번째 투옥과 탈옥
첫 번째 체포와 모진 고문
신문이 아닌 김구의 호령
새롭게 깨달은 서양 문물
삶과 죽음의 길목
강화의 큰 인물 김주경
어쩔 수 없는 탈옥

5. 방랑과 유람
천신만고 끝에 서울로
팔도강산 유람과 삼남 견문
마곡사에서 원종으로 입적
환속과 견문 그리고 김구

6. 소중한 이들과의 사별
아버지와 스승의 죽음
약혼한 여옥의 죽음
신교육자의 자유결혼

7. 민족을 위한 계몽운동
을사조약과 항일투쟁
다시 신교육과 계몽운동
안중근 의거와 김구의 항일 투옥
이완용을 찌른 이재명

8. 모질고 처참한 독립운동가들
안창호의 신민회 조직
신문이 아닌 고문 또 고문
고문보다 더한 회유
조작된 신문과 재판

9. 끝내 실행하지 못한 자살
강도사건 15년 보안법 2년
변하지 않는 도적들의 법
몽우리돌대 백범 김구
가출옥과 딸의 죽음

10. 상해서 시작된 임시정부
동산평의 농촌계몽운동
상해의 임시정부 조직
아내의 죽음

II. 백범일지 하권

하권의 책머리에

1. 삼일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임시정부 경무국장
득실거리는 왜놈 앞잡이
반목과 갈등의 사상대립
세파로 분리된 한인 공산당

2. 이봉창의 일황 폭탄 저격
일본의 만주국 선언
줄어든 독립운동가
이봉창의 일황 저격
상해의 중일 전쟁

3. 윤봉길 의거와 진상공개
윤봉길의 거사 준비
토굴속의 폭발시험
의거의 진상을 백일하에 공개

4. 또다시 피신과 유랑의 세월
호수가 있는 가흥의 은신처
여행지 같은 도피처
뱃사공 주애보
남경의 암살대

5. 암살과 어머니의 추억
중경으로 옮긴 중국 정부
목숨을 노린 암살자
빈궁하게 사는 묘족들
끝내 손쓰지 못한 어머니의 병

6. 중경의 한국광복군 창설
광복군의 조직
미군과 광복군의 비밀훈련
광복이다! 광복!!
중경생활의 추억

7. 광복된 조국 품으로
고국의 환영 행진
인천감옥 그리고 마곡사의 회상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유골봉안식
삼남지방 순회 길의 추억

III. 나의 소원
1. 민족 국가
2. 정치 이념
3.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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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책 읽어드립니다,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 백범 김구 자서전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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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이용)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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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의 치열한 삶의 기록

가장 쉽게 풀어쓰고 읽기 편하게 편집된 NEW EDIT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사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이 소원이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그분의 자서전이자 유서이다. 또한 그 암울했던 시대에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독립운동을 펼치시며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에 매진하신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라도 자신만큼 애국심을 갖는다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선생의 신념과 평생 이를 실천하며 민족의 독립에 헌신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구 선생의 질풍노도와 파란만장의 젊은 시절

백범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질풍노도의 청년기, 망국의 시련과 중국으로의 망명,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해방 후 귀국까지 파란만장했던 삶과 더불어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과 의지가 담겼다. 독립운동가와 임시정부 지도자로 평생 헌신했던 선생의 기록은 민족 지도자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비극적인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펼쳤던 민족운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김구 선생의 호가 의미하듯이 백정과 범부의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백범일지』에는 김구 선생이 스스로 말했듯이 ‘못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간 본인의 삶을 통해, 누구나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던 백범 선생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철학을 평생 실천했던 행동들이 선생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득 채워져 있기에 독자의 감동이 클 수밖에 없다.

그토록 자주독립을 바라시던 겨레의 큰 스승 그 감동의 기록!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동시에 선생이 자신의 인생과 독립운동의 과정을 알리기 위해 남긴 유서라고도 할 수 있다. 상권은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임시정부 시절 두 아들에게, 하권은 중일전쟁의 결과로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을 때 동포들에게 선생의 삶과 민족운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려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개인의 생생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동포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남긴 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백범일지』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 때문에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히고 『백범일지』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선생의 뜨거운 민족애 때문일 것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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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아버지의 어릴 적 별명은 ‘효자’였다. 그것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에 아버지가 왼쪽 약손가락을 칼로 잘라서 입에 피를 흘려 넣으셨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흘이나 더 사셨다는 데서 생긴 것이었다.
아버지 형제 중 백부(휘 백영)는 보통 농군이셨고, 셋째 숙부도 특기할 만한 일이 없으나, 넷째 계부(휘 준영)가 아버지와 같이 좀 별난 데가 있으셨다. 넷째 계부는 국문을 배우는 데도 한겨울 동안에 기역 자도 못 깨우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술은 무한량으로 마시고 또 술주정이 대단해서 취하기만 하면 꼭 말썽을 일으켰다. 그런데 아버지와는 반대로 아무리 취해도 양반한테는 감히 못 덤비고 일가 사람에게만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조부님께 매를 맞으시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 ‘난산 끝에 태어난 나’ 중에서
[P. 95] 나는 몰려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소리쳤다.
“누구나 이 왜놈을 위하여 감히 내게 범접하는 놈은 모조리 죽일 테니 그리 아시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내 발에 채이고 눌렸던 왜놈이 어느 틈에 몸을 빼쳐서 칼을 빼어들고 내게 덤볐다. 나는 내 앞으로 떨어지는 그의 칼날을 피하면서 발길로 그의 옆구리를 힘차게 걷어찼다.
“어흑!”
왜놈은 다시 거꾸러졌다. 그러자 나는 칼을 잡은 왜놈의 손목을 부러지라고 내리 밟았다. 그 순간 칼이 스르르 언 땅에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그 칼을 들어 그 왜놈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난도질을 했다.
2월의 추운 새벽이라 빙판 위에 피가 샘솟듯 흘러 붉게 물들었다. 나는 손으로 그 피를 받아 마시고 또 왜놈의 피를 내 얼굴에 발랐다.
- ‘길고도 험한 방랑 길’ 중에서
[P. 126] 밤이 초경(初更)을 넘어섰다. 이 때 밖에서 여러 사람이 떠들썩하고 가까이 오는 인기척이 나더니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때가 왔구나!”
나는 나지막하게 소리를 내고 이제부터 닥칠 운명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한방에 있던 죄수들은 자기가 죽으러 나가기나 하는 것처럼 모두 얼굴색이 변하여 벌벌 떨고들 있었다. 이때 문밖에서,
“창수, 어느 방에 있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이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미처 방문도 열기 전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이제 창수는 살았소! 감리 영감을 비롯한 전 서원, 그리고 각 청 직원이 아침부터 밥 한술 목 먹고 끌탕만 하고 있었소. 창수를 어찌 차마 우리 손으로 죽이느냐고……. 그런데 지금 막 대군주 폐하께옵서 전화로 감리 영감을 불러 김창수 사형은 정지하라는 칙명을 내리셨소. 그러자 감리 영감에게 이 기쁜 소식을 당장 창수에게 알리라 하여 이렇게 달려왔소. 오늘 얼마나 상심하였소?”
이 때가 병신(丙申)년 8월 26일이었다.
- ‘삶과 죽음의 길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