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법, 양자는 예술과 규범이라는 거리만큼이나 사실 밀접한 관련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사상이나 감정을 영상이라는 도구로 표현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와 법은 상호 관련을 맺고 있다. 영화가 타인의 명예나 저작권 등을 침해하는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청소년 보호 등 국가의 법질서에 위반되는 경우 내용규제의 대상이 된다. 내용규제의 대표적인 제도가 영화등급분류제이다. 영화등급분류제는 청소년 보호나 국가법질서의 보호를 위하여 영화로 상영되기 전에 내용의 수준에 따라 연령별 등급을 결정하여 미리 관객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영화의 내용규제방식이다. 영화를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헌법적 가치를 나타내는 표현매체로서 보호하는 것은 우리나라 판례가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간 허가제, 심의제를 거쳐 오늘날 등급분류제로 이르고 있는 영상물 내용규제의 역사에서, 헌법재판소는 수차례 허가제와 심의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전검열로서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영화가 단순한 예술 분야를 넘어서서 이와 같이 표현매체의 하나라는 것은 결국 작가가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생활상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영화 속에는 그 시대의 즐거움과 아픔, 철학 등 생활상,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 한국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이유 또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한 예술 장르가 아니라 미래를 보는 거울과 같다. 1968년 작품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일찍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 우주생활을 보여주었다. <아바타>는 인간을 닮은 아바타를 통하여 외계 행성을 개척하는 얘기를 다루었고, 자동차가 자율주행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도 많은 영화에서 보았다. 인간의 화성에서의 생활을 다루는 <마션>은 어떤가. 영화 속 상상 장면은 더 이상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드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로봇, 화성 탐사로봇처럼 오늘날 시시각각 현실화되고 있다.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하여 그 역사가 매우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생활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물의 소비형태는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과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컴퓨터, 휴대폰 등 개인화된 기기를 통하여 시간과 장소에 제한 없이 영상물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극장 이외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규모 상영관 중심에서 OTT, VOD 등 정보통신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화는 등급분류제 및 사업자, 상영관 안전규제 등의 목적으로 영화와 비디오물로 구분하여 그 개념이 법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영화는 “연속적인 영상이 필름 또는 디스크 등의 디지털 매체에 담긴 저작물로서 영화상영관 등의 장소 또는 시설에서 공중(公衆)에게 관람하게 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정의하고, 비디오물은 “연속적인 영상이 테이프 또는 디스크 등의 디지털 매체나 장치에 담긴 저작물로서 기계·전기·전자 또는 통신장치에 의하여 재생되어 볼 수 있거나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제작된 것”으로 정의한다(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결국 영화와 비디오물을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은 극장 관람 목적으로 제작된 것인지 여부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옥자>가 영화인지 비디오물인지 논란이 있었으나 영화의 소비형태가 다양화된 오늘의 시점에서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이는 그동안 영화가 무성영화, 유성영화, 흑백영화, 컬러영화, 3D영화, 디지털영화 등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고, 그에 적합한 방법으로 소비되는 것처럼 영화의 법적 개념도 변경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교양법과목인 <영화를 통한 법의 이해>라는 강좌를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교양법과목은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법적인 문제와 이슈를 폭넓게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영화를 소재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과목을 강의하면서 만들어놓은 강의안이 이 책의 기본 자료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영화를 법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영화의 소재나 주제, 영화를 둘러싸고 발생된 소송사례 등과 관련된 문제를 다각도로 다루고자 하였다. 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규범 체계이다. 영화를 보면 그 시대의 사회를 볼 수 있듯이 그 규범 체계인 법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법정드라마와 같이 특정한 법률의 적용이나 재판을 다룬 것이라면 분석할 내용이 풍부하겠지만, 로맨스, 공상과학, 인공지능 등의 장르라고 할 지라도 법적인 관점에서 논점을 도출하고 논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책은 총 35편의 영화를 6장의 큰 주제로 묶어서 편집하였다. 영화는 가능한 한 최신 영화를 중심으로 선정하기로 하였고, 해당 주제와 관련하여 최신 영화가 없으면 시간이 꽤 흐른 영화도 선정하였다. 주제별로 하나의 영화를 선정하여 관련 법적인 이슈를 논의하는데, 해당 영화가 그 주제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영화라면 그 주제로 얘기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영화평론서가 아니라 교양법률서적이다. 영화를 통하여 교양법률 지식을 가르치는 수준이고, 다만 법률 전문서적도 아니니 지나치게 깊이 있는 내용을 담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그저 영화 문외한이 영화를 이처럼 법적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고마울 뿐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시간 동안 묵은 강의안을 정리하고 다듬었고, 그 기간 동안 새롭게 개봉한 영화도 몇 편 넣었다. 영화에 대한 소개나 법적인 분석 그 어느 것도 만족하게 다루지 못하였지만 향후 개선하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일단 이 정도로 마감하고자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어준 학생들 및 이 책의 출간을 독려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좋은 책을 만들어준 박영사 관계자, 특히 보기 좋게 편집을 해주신 정수정 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2021년 3월 黃 彰 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