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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언어의 제국으로부터의 귀환 - 「해방의 아들」 / 김종욱
1. 들어가는 말
2. 언어의 제국, 제국의 언어
3. 가해의 망각과 피해의 기억
4. 맺는 말

외면된 내면으로서의 자기원망과 부끄러움 - 「만세전」, 「삼팔선」, 「이사」 / 김경은
1. 들어가는 말
2. 제 역할을 못한 부끄러움-「삼팔선」과 「이사」 그리고 「만세전」
3. 맺는 말 : 보충되어야 할 염상섭의 내면을 위하여

해방기 민주주의들의 풍경 - 「효풍」 / 유예현
1. 들어가는 말-염상섭과 민주주의
2. 공론장이 부재한 거리, 사랑방에 유폐된 민주주의의 꿈
3. 구락부‘들’에 대한 탐색과 그 실패
4. ‘조선학’ 구상과 그 의미
5. 맺는 말

‘소년’의 발견과 전시되는 ‘국민-되기’의 서사 - 「채석장의 소년」 / 김희경
1. 들어가며
2. 단정 수립 ‘직후’의 시간 불러오기
3. 배제/포섭의 감각과 ‘국민-되기’의 욕망
4. 두 개의 서사 시간과 균열에서 목격되는 소년의 ‘강박’
5. 리얼리스트와 알레고리, 변형태로서의 「채석장의 소년」

통속 서사와 냉전시대의 정치성 - 「난류」 / 천춘화
1. 머리말
2. ‘연애-결혼’이라는 통속 서사의 이면
3. 정략결혼의 알레고리와 정치성의 변형
4. 냉전시대 ‘젊은 세대’의 윤리와 「난류」
5. 맺음말

냉전의 회색지대 - 1950년대 염상섭 소설에 나타난 한국전쟁 / 나보령
1. 들어가며
2. 염상섭의 해군 체험과 문학
3. 친밀한 ‘적’과 작은 전쟁들
4. ‘얼럭진 일상’이라는 은유
5. 결론을 대신하여

해방 후 염상섭 소설의 ‘서울’이라는 지리적 구상 - 「난류」와 「취우」 / 유건수
1. 들어가며
2. 해방 후 수입 무역의 변화와 ‘난류’의 이중적 의미
3. 닫혀있지만 동시에 열려있는 ‘서울’
4. 「난류」의 ‘서울’과 「새울림」·「지평선」의 ‘부산’
5. 나가며
한국전쟁기의 (재)구성 - 「홍염」과 「사선」 / 유서현
1. 들어가며
2. 열전의 적에 가려진 냉전의 책임자들
3. 1948, 1950, 1952의 중첩과 중간파의 행로
4. 정치의식과 연애서사의 중첩과 그 너머
5. 나가며

전후의 일상과 집 - 「미망인」 / 장두영
1. 서론
2. 피난의 연장으로서의 서울 환도와 집 구하기의 서사
3.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4. 선의의 도움과 새 시대의 소망
5. 결론

1950년대 염상섭 장편소설에 나타난 여성과 정치 - 「대를 물려서」 / 윤국희
1. 서론
2. 가부장‘들’과 대를 잇지 못하는 아들
3. 대를 물려줄 수 있는 ‘처/모’의 서사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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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보, 분단을 가로지르다 : 염상섭 연구 2022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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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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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소설사에서 염상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저물어가는 봉건왕조의 도덕을 배우며 성장했고, 야만적인 식민 착취를 외면한 채 풍요와 번영을 예찬하는 제국의 윤리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옥죄는 오래된 인습과 날선 이념에 쉽게 몸을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외로웠을지도 모릅니다. 때로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 어느 곳에서도 머물지 않은 채 표표히 역사가 만들어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예언서는 버려두고 나침반도 팽개친 채 오직 자신이 지닌 몸의 감각을 믿고 이성의 지혜를 활용하며 가야할 길을 찾았습니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만들지 않았으니 지름길이 아니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염상섭이 걸었던 풍경들은 이제 우리들에게 낯설기만 합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우리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멀리, 그리고 빠르게 떠나왔습니다. 그동안 저자거리에서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책상 앞에서 씌어지고 인쇄되어 팔리는 소설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새로운 제도 아래 편입되어 독자적인 영토를 확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정신을 이끌던 낯선 풍경을 잠시 펼쳐보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잊혀진 지층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의 말들을 지금 다시 읽는 일들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활자로 새겨놓은 말들은 오롯하게 하나의 줄기를 만들기보다 여러 개로 나뉘어 갖가지 의미를 만들어 내기 일쑤였습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면 점차 명료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 번 읽고 네 번 읽을수록 더욱 불투명해진다는 뜻입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읽은 염상섭은 언제나 어눌한 척 중언부언하며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만들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명료한 형태로 다시 그려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작가 염상섭보다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용된 방식이 그러할 뿐입니다. 그러니 염상섭이 뿌옇게 그려낸 세계를 항상 투명한 것처럼 만들어내는 왜곡을 범하고 있다는 당혹감을 지금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이 책은 한 해 동안 염상섭 소설을 읽었던 기록입니다. 염상섭 소설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코비드19라는 낯선 이름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백 년 전에도 사람들이 팬데믹을 겪었고, 공포와 무기력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 왔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듯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뒤늦게 뒤적거리면서 우리는 의미라는 것이 언제나 사후적이라는 해묵은 진리를 다시 배웁니다. 그리고 소설은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