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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13
어린 꿈·14
삐리 생각·15
가뭄타령·16
허수아비·17
민들레·18
和音·19
竹篇·1·20
竹篇·2·21
竹篇·3·22
균열·23
동행·24
이슬 보기·25
接石·26
늦꽃·28
雨中·29
鶴 접기·30
단풍놀이·31
어느 밤중·32
戱畵·33
빈 집·34
너에게·35
戀歌·36
명태·37
蘭·38
사과깎기·39
虛·40
貧者의 돌귀·41
다른 감나무·42
돌의 시간·43
나비祭·44
봄·밤·비·46
목련에서·47
잠자리 날다·48
갈대·50
해설 | 신경림_곧고 매디가 있는 대나무 같은 시편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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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편 : 서정춘 복간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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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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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춘 시인의 삶은 「30년 전」과 「죽편·1」로 압축된다. 그는, 대꽃 피는 마을을 찾아 여기까지 달려온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었다. 1941년 전남 순천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매산중고야간부를 졸업하고 1968년 시인으로 데뷔할 때까지 줄곧 가난과 독학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던 빨치산 ‘외팔이 장씨’, 동경 제대 출신 조율사 ‘피아노 최씨’, 그리고 신문 배달을 하다가 우연히 집어들어 밤새 필사했던 영랑과 소월의 시집들이 그의 문학의 아버지들이었다. 그는 “시가 그렇게 좋은 것인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를 읽으면 현실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중학교 3학년 때 외팔이 장씨의 서가에서 (분단 이후 1980년대 후반에야 해금된) 정지용·백석·이용악·오장환을 다 읽었고, 구상 시인의 친구라는 피아노 최씨에게 정식 시인으로 인정받고 막걸리상을 마주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러나 이같은 문학적 이력과 독학으로 한 문학 공부는 그로 하여금 시를 너무 높은 경지에 올려놓게끔 했다. 시에 대한 결벽증이 극심했던 것이다. 그가 그동안 쓴 시는 70편 정도. 그나마 절반 이상을 버렸다. 시집을 펴낼 생각은 없었다. 만일 어쩌다 낸다면 20편쯤으로 묶을 생각이었다. 결벽증 탓이었다.

그가 첫 시집을 펴낸 날짜는 그의 정년 퇴직 날짜와 일치한다. 지난 3월 31일, 28년 동안 봉직해온 동화출판공사에서 물러난 것이다. 데뷔한 이듬해, 고졸 학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던 그를 당시 한국 소설 문학의 ‘미래’로 인정받고 있던 김승옥씨가 소개해 입사한 직장이었다. 그는 참선하듯이 타고난 야생마(낭인) 기질을 깔고앉아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았다. “퇴직하고 나면 쓸쓸해질 것 같아, 한번 묶어 본 것이다. 20년 전부터 시집을 내자고 보채온 유재영(동학사 대표·시인)이란 친구가 아니었으면 그나마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를 아끼는 친구와 후배들이 열어주었던 인사동 출판기념회는 기실 두번째 출판기념회였다. 그가 기획한 출판기념회는 순천에서 열렸다. 그는 막 나온 첫 시집을 들고 고향을 찾았다. 그를 낳고 키워준 고향 산천에 인사하고, 고향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오늘까지 시인이게 해주었던 한마디―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이 되어야지,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써서는 안된다―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문재(시인), 『시사저널』 기사 부분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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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 1959년 겨울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어린 꿈
― 대대포 언덕의 어린 날의 꿈

내가 가난한 농사꾼의 아이였을 때
어린 내게는 아직 일러 농사 일도 없어서
심심찮은 밥벌이로 남의 소나 먹이다가
언덕에 풀어져 잠이 든 꿈에
하늘을 파랗게 쳐다보는 사람을 보고
쫓아와 주는 학이 있었습니다
빨그랑 햇덩이를 머리에 찍어 달고
목청 터지게 울음 울어
소 있는 내 곁에
神같이 내려앉아 주었습니다
나는 소 고삐 말아 쥔 채
다락 같은 학을 타고 하늘 높이
소를 몰아 날아올랐었지만
내 황홀했던 어린 날의 가장 어린 꿈이 되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꿈이 그리워
숨이 가빠오른 채 이 시를 씁니다
삐리 생각

난장 튼 날 뜬쇠 판쇠 뒤를 따라서
집 떠난 지 석달 열흘 우리 삐리야
땅재주도 한바탕 못 부릴 바엔
온다온다 말만 말고 빨리 오너라
땟국물에 빈말도 그냥 좋으니
내일 모레 가을 가고 찬바람 몰아치면
우리 삐리 겨우살이 어찌 할꺼나
가을볕이 바람 속에 따갑게 흔들리면
없는 소리 징소리도 빈 귀에 헛들리고
삐리 또래 아이들이 알대추를 따 내는 짓거리만 봐도
있도 없는 찬바람에 등골이 오싹하고
그러더니 사나흘을 코감기로부터
싫고도 짜릿한 재채기를 쏟으며
우리 삐리 오기를 마냥 그리니
눈부시게 설쳐 대는 가을 햇살 등쌀에
삘그르니 막물 든 늦대추 몇 알도
삐리 돌아오기를 거들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