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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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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한국에 평화·공존을 묻다
한소수교에서 하노이 노딜까지,
UN 동시가입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42개 장면으로 보는 남북관계사 1990-2020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질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질문을 조금 연장해보자. 남과 북의 관계가 냉온탕을 끝없이 오가며 풀릴 듯, 도무지 풀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비대칭 탈냉전’이라는 렌즈로 1990-2020년의 남북관계사를 돌아본다. 1990년은 ‘탈냉전’이라는 이름의 대전환, 즉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 냉전질서와 그 위에 놓인 한반도 분단체제에 일대 격변이 벌어진 때다. 이 해를 전후로 동·서독이 통일하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 체제전환이 일어났다. 반면 한반도에서의 탈냉전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소련·중국(사회주의 진영)과 국교를 맺은 한국 대 미국·일본(자유주의 진영)과 수교에 실패하며 홀로 고립된 북한’이라는 비대칭적 탈냉전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기울어진 탈냉전’을 바느실로 1990-2020년 남북 사이의 결정적 사건 42개를 한데 엮는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30년을 한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 숨은 맥락(남북의 불신과 북미 간 적대, 북핵문제의 근원과 해법,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의 본심)을 포착해 한반도 분단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안목을 선사한다.

당대 최고의 군사전략가로 노태우 정부(1988-1993) 시기 남북회담의 주역이자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1998-2008, 2017-2022)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설계자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이 책을 ‘남북실록’으로 평가한다. 실록의 집필자 이제훈은 남북관계의 현장을 빠짐없이 목격하고 기록해온 30년차 저널리스트이자 그 관심과 고민을 학문의 영역으로 확장해온 북한학자다. 그의 시각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 남북 공존과 평화라는 이상을 위해 무엇보다 사실과 현실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어떤 보수보다 보수적이며, 어렵사리 움튼 평화가 매번 뿌리내리지 못하고 짓밟히는 역사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진보적이다. 이런 균형에 힘입어 이 책은 신실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어도 남북통일에 동의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이재에 밝은 시장주의자일수록 남북경협의 적극적 지지자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남북관계 30년을 먹기 좋게 정리한 역사교양서인 동시에, 좌우 이념과 무관하게 평화로운 일상을 바라는 한반도 주민 모두를 위한 공존의 길잡이다.

정전 70년―
‘절망하지 않는 희망’을 위한 남북관계 이야기

총 3시즌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남과 북 사이로 끊길 듯 말 듯 좁다랗게 난 평화의 회랑을 따라간다. 1부(1990-1997)에서는 노태우 정부~김영삼 정부에서 일어난 비대칭 탈냉전 초기의 주요 사건(남북한 UN공동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교류협력법 제정, 한국의 탈냉전과 북한의 고립, 1차 북핵위기 등)을 다룬다. 백미는 남북 평화·공존의 두 수레바퀴(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함을 국제사회가 승인한 UN공동가입과 남북이 ‘통일지향 특수관계’임을 규정함으로써 이후 모든 남북합의와 화해·협력의 초석이 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다. 그러면서도 통일 전 동서독이 체결한 ‘기본조약’과의 비교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에 내포된 ‘적대’를 감지해낸 것은 이후의 남북관계를 내다본 듯 씁쓸한 복선으로 읽힌다.

2부(1998-2007)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2차 북핵위기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 펼쳐진 대북포용정책(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6자회담 등)이 중심이다. 1-2부를 통틀어 중요한 발견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본심’이다. 성사 직전의 북일수교(1992, 2002)를 두 차례나 막아서고 북핵문제 해결의 분수령이었던 6자회담 합의(9·19공동성명)에 재를 뿌린 행위 등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좌우하는 것이 동맹국의 평화가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패권유지 전략임을 드러낸다. 이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발견은 ‘정치인의 역할’이다. 흔히 남북관계의 관건으로 동북아 국제관계의 역학을 들지만,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일치시킬 줄 아는 정치인의 가치에 주목한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북방정책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이루고서도 ‘비대칭 탈냉전’의 유혹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성과를 깎아내린 노태우,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의 불쏘시개로만 동원하며 갈지자 행보를 보인 김영삼과 온갖 내우외환 속에서도 화해·협력정책을 밀어붙이며 협력과 평화의 선순환, 즉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해낸 김대중·노무현의 대립항이 그것이다.

3부(2008-2020)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년, 그리고 해빙과 동결을 거듭 오간 문재인 정부의 3년이 묶어 전개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북제재를 명분으로 내지른 금강산관광·개성공단 등의 교류협력 중단이 사실상 한국의 자해행위였음을 밝히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히 회고한다. 김정은의 표준시 변경(‘평양시간’) 해프닝과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통해, 2023년 수면 위로 떠오른 북한의 ‘투 코리아’ 노선을 한발 앞서 진단한 대목도 눈에 띈다. 결론에서는 한반도 문제(남북 화해-한반도 비핵화-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의 해법으로 그간 시도해온 양자(남북·북미)-3자(남북미)-6자(남북미중일러) 협상이 아닌 남·북·미·중의 ‘4자 평화회담 테이블’을 제시한다. 이는 미국-중국의 패권다툼이 치열할수록 한반도 문제에서 미중의 합의가 필수조건이 되는 역설적 역학과, 70년 전 조인된 한반도 정전체제 4개 당사국의 결자해지라는 역사적 흐름 모두에서 주목할 만한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