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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 권리 : 어떻게 나 같은 놈한테 책을 주냐고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216531 027.402 -25-1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신착도서
(자료실내 이용)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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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아주 특별한 느티나무도서관 15년
그 아름다운 감동의 나날들을 만나다!


작지만 아주 특별한 곳, 느티나무도서관이 만들어가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
1999년, 지방의 어느 도시 지하 공간에 자그마한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여태껏 아무도 꿈꾸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년, 이제 이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공간이자 열린 정보센터로, 나아가 한국 도서관의 좋은 모범으로 뿌리내렸다. 바로 ‘느티나무도서관’ 이야기다.
저자인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은 2000년 느티나무도서관, 2003년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을 설립했다. 그 뒤 작은도서관 지원, 공공도서관의 지역사회서비스 강화, 민관협력, 여러 지자체와 단체의 도서관 설립 운영 지원, 해외 민간교류 등 많은 일을 하며 도서관 현장의 고민과 도서관의 미래 전망에 대한 답을 찾고자 애써왔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수고, 그리고 도서관과 책,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유의 결과물이다. 15년간 민간사립 공공도서관을 운영해온 저자는 애써 큰 목소리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그동안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담담히, 생생히 전하고자 한다. 그것이 오히려 더욱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지만 진정 깊고 넓은 그 목소리가.
세상은 도서관이 책을 쌓아두고 빌려주는 곳, 시험공부 하기 위한 곳일 뿐, 장애인과 학교밖청소년들과 다문화가정은 얼씬할 수 없는 곳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언한다. 학력 나이 직업 국적 불문, 누구나 예외 없이 마음껏 쉬고 뒹굴고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라고. 그것이 헛된 희망이나 허황한 이념이 아니라 실제로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공간, ‘느티나무도서관’이 여기에 있다.
함께 흔들리며 살아가기
“어떻게 나한테 책을 주냐고, 그니까 어떻게 나 같은 놈이 책을 볼 거라는 생각을 하냐고요, 응?” 저자에게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가르쳐준 것은 포럼이나 세미나에서 만난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간신히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도서관 역대 최고 말썽꾼의 명성을 누리다 막 청년이 된 아이의 이 한마디였다. 책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밥을 얻어먹거나 돈이 될 물건을 훔치거나 하룻밤 잠자리로 삼기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도서관아이’로 불리게 된 청년. 졸업장도 돈도 집도 심지어 가족까지, 없는 게 너무 많은 이런 ‘도서관아이들’과 쌓아온 신뢰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느티나무가 도서관운동을 이어가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정보서비스는 도서관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장애인이나 이주민, 학교밖청소년, 미혼모 같은 이들이 맞닥뜨리는 사회의 장벽은 너무나 높고 견고하다. 이 ‘보이지 않는 문턱’을 허물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각종 주제로 꾸려진 커뮤니티 코너를 마련하고, 휠체어를 준비하고, 독서확대기와 보이스아이를 장만하고, 점차통합그림책을 제작하고, 여러 나라 책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모든 서비스가 ‘특별함’이나 일방적인 ‘배려’로 이어지면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를 이어가기 힘들며 또다른 소외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계한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며 어울리는 일은 일상에서 함께 삶으로 살아내야 할 ‘문화’이며, 더이상 ‘소수자’가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공공도서관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저자는 ‘다름’을 공공성이라는 더 큰 비전으로 아울러낸다. 획일적, 수동적 공공성이 아니라 자발적 실천과 소통과 상상력이 펄펄 살아 있는 역동적 공공성으로. 무엇으로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고 문화적 삶을 보장한다는 사명에 걸맞게.

지적 자유를 위하여
도서관에 오면 자꾸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저자는 그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을 바꿔온 힘을 한 글자로 하면 ‘물음표-?’이며 도서관에는 온통 물음표로 가득하다고. “그렇다면 도서관은 ‘필’이 꽂혀서 결국 뭔가를 하게 만드는 기회들로 가득하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온통 가슴을 채우고 취하고 미쳐서 도무지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 그것을 발견하고 이어서 물음표를 엮어가는 것은 오롯이 읽는 사람의 몫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물음표는 낯설다고 저자는 인정한다. 일례로 새 학기나 방학이 되면 부모들은 학교에서 내준 책 목록을 들고 와서 검색대와 카운터를 오가며 책을 찾느라고 바쁘다. ‘필독서’라는 이름을 단 무언의 협박, 강요 지침이 횡행할 때, 스스로 물음표를 떠올리는 앎과 배움의 자발성은 설 자리가 없다. 그러니 “도서관 열람실 벽에는 ‘정숙’이라는 경고문 대신 ‘선입견이나 주장 주입 금지’라고 써 붙여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도서관은 ‘스스로 배우고 서로에게 배운다’는 자발성과 상호작용에서 또 하나의 큰 존재 의미를 가진다. 역사상 수많은 권력자들이 도서관을 불태웠던 것은 이 때문이다. 물음표는 통제할 수 없는 정신적 성장을 낳고, 결국 자유를 갈망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저자는 말한다. 가르치려 드는 대신 책과 사람을 만남으로써 스스로 배우게 되는 힘을 믿고, 평가나 경쟁 대신 지적 호기심으로 배움의 동기를 찾도록 북돋우고, 정해진 틀이 아니라 일상의 만남과 소통이 배움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도서관이 할 역할이라고.

누구나 꿈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
나이가 어려도 학력이 낮아도 진지할 권리,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당당할 권리,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권리. 도서관에서 누리는 권리다. 여기에다 빈둥거릴 권리, 실패할 권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누군가를 돌볼 권리, 자유로워질 권리, 행복할 권리, 그리고 꿈꿀 권리까지. 하지만 이 많은 권리는 결코 공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쏟아온 땀의 결실이다. 그렇기에 느티나무도서관 15년 이야기는 더욱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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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모리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학력이나 지위에 주눅 들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함으로 마음을 달래지만, 정말 ‘뭘 먹어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정확한 이유는 우리도 알지 못했다. 그저 제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는 도서관을 비빌 언덕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하고 여길 뿐. 언젠가 도벽으로 경찰서에 잡혀간 아이가 진술서에 ‘도서관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사람같이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써놓은 걸 보았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_26쪽

아빠가 된 아이는 저녁마다 얼굴을 보는데도 하루에 몇 번씩 숨이 턱에 차서 전화를 걸고 질문을 퍼부어댔다. 병원에서 준 배꼽 약을 바르려고 보니 배꼽이 너무 이상하게 생겼다, 도저히 약을 바를 수 있는 모양이 아니다, 아기가 똥을 열 번도 넘게 쌌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먹였는데 자꾸 운다, 저러다가 죽으면 어떡해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 도대체 도서관 참고서비스의 끝은 어디인가. 아무튼 분명한 건, 그 작은 방에 새 식구가 태어나면서 우리가 서비스할 고객과 도서관이 존재할 이유가 하나씩 더 늘었다는 사실이다._53∼55쪽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과 자료는 경쟁에서 이기고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함께 배울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종종 삶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별이나 바람이나 물의 흐름처럼 길을 찾아갈 실마리였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도움닫기를 하는 데 필요한 구름판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아기아빠가 되어 호흡이 3배속으로 빨라진 청년을 만났을 때, 아이의 사춘기를 곱절로 앓는 엄마의 넋두리를 들을 때, 몇 년 만의 여행이라며 해초부터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이용자가 여행서를 찾을 때, … 우리는 문득 어떤 책들을 떠올렸다._56쪽
갇힌 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바깥세상과 단절된 곳에 발이 묶이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도서관의 아웃리치서비스는 자주 ‘면회’라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찾아올 때 만나는 문턱만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병원, 미혼모시설, 구치소나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을 찾아갈 때는 ‘도서관이 넘어서야 할’ 문턱이 있었다. 알아봐야 하는 것도, 정확하게 챙겨야 할 정보도 많았다._66쪽

신부나 목사와 도서관장을 차별한다고 진짜 억지를 쓰려는 건 아니다. 다만 도서관의 인지도가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 괜히 그렇게 심통이 났다. 학교나 교회나 복지관은 누가 봐도 뭘 하는 곳인지 금세 안다. 그런데 도서관은 책을 제자리에 꽂는 것밖에 일이 없는 줄 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고르고 사들이고 정리하고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서비스하는 일, 이용자들의 요구를 읽고 지역사회의 특성과 변화를 읽어 장서와 서비스에 반영하는 일,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잠재이용자들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도서관을 만날 기회를 마련하는 일, 새내기 청년들의 자립준비나 정년을 앞둔 사람이 인생 제2막을 맞이할 준비를 지원하는 정보서비스 같은 일이 이뤄진다는 걸 알기 어렵다._71∼72쪽
두려움을 가르칠 권리는 없다
자원봉사에서 ‘자원自願’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미 사라졌다. 모든 것이 입시로 연결되는 현실에서 아이들의 인권이나 건강마저 시험 치를 때까지만 접어두자고 하는데 봉사시간쯤이야!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활동을 경험하는 기회지만 자발적인 동기보다는 입시성적에 포함되는 스펙일 뿐이다. 아이들의 표정 없는 얼굴과 옆에 선 학부모들의 전투적인 자세가 그 증거다.
‘비자발적’ 자원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빛이 날 리 없다. 표정 없는 아이들의 시간 때우기를 지켜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붙잡고 따지고 싶어진다. 안 그래도 세상 속에서 세상을 배우는 게 아니라 세상과 격리된 교실에서 세상에 ‘대해서만’ 배우는 현실인데, 이제 교실 밖에서조차 살아가는 법이 아니라 ‘∼하는 척’ 혹은 ‘맛보기’로 체험하는 법만 가르칠 셈이냐고!_80쪽

책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도서관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에는 차마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 어려울 만큼 거리가 생겼을 때, 서로에 대한 이야기 대신 함께 읽고 나서 함께 흥분하고 수다도 떨고 때론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셀 수 없이 담겨 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눈이 빠지도록 책을 고르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 책을 고르는 데 너무 바빠서 자신이 함께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_92쪽

유난히 키가 큰 열여섯 살 남자아이가 구부정하게 아이를 업고 선 채 한 손으로 그림책을 들고 등에 업힌(매달린) 아이에게 읽어주고 있었다. 다른 손으로는 자꾸 흘러내리는 아이를 연신 치켜올리느라 진땀을 뺀다. 청소년 자원활동이라는 슈퍼 울트라 고난이도 프로그램을 이어갈 이유가 이 짧은 순간에 모두 담겨 있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어느 날, 문득 이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까. 함께 읽은 그림책의 제목이나 서로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어디서나 책꽂이에 책이 꽂힌 풍경을 만나면 가슴이 뛰지 않을까, 세상이 두렵고 무력감을 느낄 때 내게 오롯이 몸을 기대고 매달리던 누군가의 무게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건 이런 일들인지 모른다._101∼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