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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 도서관,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216524 027.4 -25-3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신착도서
(자료실내 이용)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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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기본가치인 공공성과 지적 자유는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기획 의도]

도서관으로 꿈꾸는 더 나은 삶과 세상
지난 15년간 작지만 특별한 사립 공공도서관인 느티나무도서관은 도서관이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구현하고 증명해왔다. 그래서 ‘도서관계의 실험실’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 책은 그런 선구적인 도전과 실험들의 세세하고 친절한 보고서이자 안내서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이용자서비스, 각종 활동, 사업 등 모든 부문에서 언제나 새로운 시도와 모험으로 도서관의 기본가치인 ‘공공성’과 ‘지적 자유’가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왔다. 여전히 도서관을 공부방으로 여기는 이들이 더 많은 세태 속에서, 도서관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어떤 것을 누리고 실천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최대치를 추구해온 셈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느티나무도서관이 모든 도서관들이 본받을 전범이 아니라 한 가지 사례로 받아들여지기를, 거기에서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와 시행착오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가지면서, 끝없는 미완성의 가능태로 존재하는 곳, 그것이 바로 도서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도서관계의 실험실
“왜 도서관이었나요?” 저자가 15년간 가장 자주 들어온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에 대한 대답은 ‘자유’와 ‘공공성’이다. 우리를 옭아매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의연히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갈 힘을 얻고, ‘누구나’ 읽고 생각하고 상상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곳, 인간의 존엄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곳. 그것이 바로 도서관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도달 불가능한 이상이나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지적 자유와 공공성이라는 도서관의 정신은 실제로 느티나무도서관이 걸어온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상으로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다. 이용자서비스에서부터 공간 구성과 각종 대내외 활동, 도서관운동과 사업, 그리고 세세한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느티나무도서관이 펼쳐온 다채로운 사례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예컨대 어느 날 아이들이 분류기호 000 총류를 보고 공짜냐 1,000원이냐 내기를 하는 것을 보고는 도서관의 책이 어떻게 제자리를 갖는지 아이들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주제마다 색깔이 다른 띠라벨을 ‘개발’해 붙인다. 그리고 관련 있는 책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살림’ ‘NGO’ ‘연구’ ‘지역사회’ 같은 ‘별난’ 별치기호를 붙이거나 더 나아가 ‘청소년’ ‘강좌’ ‘탐정이야기’ 등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컬렉션으로 이용자들에게 다가간다. 또 누구나 남들에게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소개할 수 있도록 해당 서가 위에 표지가 보이게 세워두는 자리를 마련한다.
더불어 ‘공공’도서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제재, 통제, 금지’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을 안내한다. 사탕과 아이스크림 반입 불가라고 하지 않고 도서관 입구에 의자를 마련해 “여기서 먹고 들어갈까, 우리?”라고 안내문을 붙인다. 대출금지 대신 “도서관에서만 보는 책”이라고 써 붙이고, 책이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하기보다 ‘찢어진 책을 다루는 법’에 대해 안내한다.
전기나 가스계량기 검침기사, 우편배달부, 식당 배달원 들을 비롯해 공원, 놀이터, 문구점, 식당, 미용실, 슈퍼 등 가까운 곳에 있는 수많은 잠재이용자들에게 말을 걸고 찾아가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청소년 자원활동가들이 수레를 끌고 밥집, 떡집, 미용실을 돌며 책수레 서비스를 한다.
도서관 공간에도 공공성의 정신은 어김없이 담겨 있다. 도난방지시스템을 설치하는 대신 그냥 책 잘 잃어버리는 도서관이 되기로 한다든지, 한글을 모르는 이들도 알아보도록 펼친 책의 한 페이지처럼 간판을 만든 일이 그렇다. 또 ‘장애인전용’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으려고 기저귀교환대와 아기의자를 달아 ‘다용도’ 화장실로 만들거나, 화장실 안내표지에 성차별 인식이 담기지 않게 하려고 고민하다 결국 색깔로 구별하거나, 휠체어나 유모차를 생각해 1센티미터라도 턱이 생기지 않게 입구를 아예 시멘트 포장으로 바꾸거나, 엘리베이터 내부에 위험한 유리거울을 다는 대신 스테인리스 소재로 마감한 일화 등도 마찬가지다. 아기들을 위해서는 담요, 방석, 기저귀, 상비약, 포대기, 보행기를 비치해둔다.
가장 중요하게는 묵독과 낭독과 토론의 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다. 독서, 책 읽어주기, 각종 모임과 활동이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게 이루어지도록 공간을 나누고 배치함으로써, 도서관이 그야말로 만남과 소통과 어울림의 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언젠가 느티나무도서관을 방문해 아이들이 도서관 여기저기에서 때로는 아빠와 함께 뒹굴며 책을 읽고 있는 광경을 본 박재동 화백이 했던 이 말은 아마 그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조화로움의 일부였을 것이다. “나는 그날 천국을 보았다! 어떻게 이 풍경을 그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용자에서 시민으로
도서관은 흔히 ‘밑 빠진 독’ ‘돈 먹는 하마’로 일컬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립이 아닌 사립도서관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저자는 도서관 후원이 시혜나 자선이 아닌 함께 누리고 참여하는 기부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동참 행위는 근본적으로 ‘시민의식’의 성숙과 뿌리가 닿아 있다.
“왜 도서관이었나요?”와 함께 저자가 종종 듣는 질문은 “언제까지 사립도서관을 이어갈 생각이냐?”다. 대답은 “함께할 사람들이 있어서 할 수 있을 때까지”와 “공립도서관들이 어떤 힘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도서관의 정신과 역할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받을 때까지”다. 그동안 느티나무도서관은 사립으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많은 일들을 해왔다. 도서관을 꿈꾸는 사람들이 꾸준히 만나고 함께 역량을 키워갈 장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도서관학교’,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도서관 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예비사서학교’, 도서관문화 발전에 힘이 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시도한 ‘친구도서관사업’ 등. 더불어 한일교류도서관심포지엄과 중국 조선족학교 도서실 조성 지원 같은 민간교류까지. 정치와 행정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공립과 달리 사립은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자유로움이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또한 가능하다.
도서관서비스는 준비부터 전달까지 철저히 책과 사람과 공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저자는 도서관 이용자가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가 아니라 사유하는 독자, 내적 동기에 따라 배우며 성장하는 학습자,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시민’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지는 않겠습니다”라는 말의 참뜻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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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26] 01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왕처럼 모시지 않겠다는 말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용자들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지는 않겠다는 뜻과 왕을 섬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정으로 존중하겠다는 뜻.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말 그대로다. 고객을 ‘고이 모셔두지 않고’ 그들의 상상력과 꿈에 말을 걸겠다는 다짐인 동시에, 말을 걸면 기꺼이 소통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뢰의 표현이다. … 왕처럼 모시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자발성에 대한 바람과 ‘가르치려고 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선언이다.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가 아닌가. 훌륭한 시설과 장서를 갖추고 있다 해도, 책을 만나고 그 만남의 진동이 삶 속에 스며들도록 ‘만들’ 수는 없다. 도서관은 말을 걸 뿐,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에 가닿는 것은 그들 자신의 몫이다.
[P. 51] 어느 날 아이들 몇 명이 와서 자기들끼리 내기를 하는 중이라며 물었다.
“000이 공짜인 거 맞아요?”
“아니죠? 1,000원이죠?”
책마다 붙어 있는 띠라벨을 보고 300은 사회과학이 아니라 300원, 600은 예술이 아니라 600원, 900 역사는 두꺼운 책도 많으니 제일 비싼 900원(!)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한 아이들이 000 총류에서 공짜냐, 1,000원이냐 의견이 갈린 것이다. 그 뒤로 우리는 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인 배가의 원리를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이해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이용자교육을 궁리하고 시도했다. 도서관의 책이 어떻게 제자리를 갖는지, 아이들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P. 87]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오랫동안 고수해온 원칙 중 하나가 “안 돼”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다. 모든 걸 허용하거나 방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규제가 생기면 그만큼 자유가 몫을 내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책을 펼쳐들고 있을 때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머무는 모든 시간 동안 자유롭고 자발적인 긍정의 기운을 누리기 바랐다.
도서관만큼 ‘제재’ ‘통제’ ‘금지’ 같은 낱말이 어울리지 않는 곳도 없을 것이다. 뭔가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곳, 배우고 성장하며 상상하고 꿈꾸도록 북돋우는 곳 아닌가. 도서관은 저마다 배움과 성장의 스토리를 엮어가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필요한 자료를 만날 수 있도록 담고 있는 저수지 같은 곳이다. 인류의 모든 지적?문화적 활동의 기록물들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유와 성찰을 흔들어 깨우고 상상력을 북돋우어 삶에서 자유의 폭을 넓히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통제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기꺼이’ 배려하며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 참으로 당찬 바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도서관다운, 도서관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존중이나 배려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다. 자발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충분히 존중받고 배려받는 기회를 누리도록 도서관의 환경과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